미국 대통령 가운데 처음 중국을 방문한 것은 리처드 닉슨이다. 1972년 2월 21일 중국에 도착한 닉슨은 7박 8일의 긴 일정 동안 만리장성을 포함, 베이징과 상하이, 항주 등을 둘러봤다. 모택동이 닉슨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꺼낸 첫마디는 “우리가 만나는 것을 우리 옛 친구 장개석은 좋아하지 않을 거야”였다. 이 만남이 계기가 돼 결국 7년 후 미국은 대만과의 국교를 끊고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이룩하는데 성공한다. 중국과 국교 수립 발판을 닦은 것은 닉슨 업적 중 가장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70년대 초 중국은 국제적으로는 미소 양대국을 적으로 하고 국내적으로는 50년대 대약진 운동과 60년대 문화 혁명의 실패로 극심한 가난과 혼란에 빠진 약체였다. 장개석과 대만을 지원하고 한국전 때 서로 피를 흘린 미국과는 원수지간이었고 소련과는 공산주의 운동 주도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처지였지만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공산주의 세력을 분열시키고 장차 열릴 방대한 중국 시장을 파고들 발판을 만들겠다는 계산이 있었다. 결국 두 나라의 이익이 맞아 떨어져 정상회담은 열렸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1987년 ‘중국에 간 닉슨’(Nixon in China)이라는 뮤지컬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은 내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밴쿠버에서 공연된다.
닉슨 이후 많은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고 미국은 중국에 대해 주로 훈수를 두는 입장이었다. 1998년 클린턴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장쩌민 주석과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천안문 사태의 무력 진압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2002년 조지 W 부시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청화대에서 자유와 인권 등 미국의 가치가 인류 보편의 가치임을 역설했고 이것은 중국 전역에 중계됐다.
그러나 이번 버락 오바마 방문 때 보여준 중국의 태도는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기자회견장에서는 질문도 허용되지 않았고 상하이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오바마가 인터넷 검열을 비판한 부분은 인터넷 검열에서 삭제 당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중국은 미국에 더욱 거리낌 없이 ‘노’라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중국 방문에서 미국은 예전과 달리 상대를 회유하고 때론 비위를 맞춰야 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뭐라던, 뭐라고 생각하건 아랑곳 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한마디로 위상이 바뀐 것이다.
수교 당시 미국은 수퍼파워였고 중국은 제3세계 수준으로 형편없는 최빈국이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세계 최대 채무국이고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다. 말발이 서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눈치를 봐야할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중국의 콧대는 높아져만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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