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오소미 시인의 ‘이별을 위하여’시집 출간에 대한 김완하 교수(UC 버클리 방문학자)의 서평이다. 김교수는 지난 1일 산타클라라에서 열렸던 출판기념회에서 오소미 시인의 시 해설을 했었다.<편집자주>
등단 후 15년 만에 첫 시집을 펴낸 오소미 시인의 시에서 우리는 아직 때가 묻지 않은, 그의 이 세상을 향한 풋풋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첫 시집을 일러서 처녀시집이라고 말하거니와, 그의 첫 시집의 감성은 처녀의 티 없이 맑고 깨끗함에 닿아 있다. 후기 자본주의라고 하는 오늘날 광속(光速)의 이 세계에서도 이렇듯이 맑고 투명한 사랑의 정서를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오소미가 시인으로 살아온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 시인으로 산다는 의미의 가장 큰 가치는 여기에 있다. 시인은 시정신을 간직하고 살아감으로써 자신을 올곧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오소미는 순수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간직하고, 세태에 물들지 않고 살아가며 인간 본연의 감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인간의 감성이란 기실은 외로움과 그리움이라는 두 가지 정서로부터 발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외로움과 그리움을 느낄 만한 여유조차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우리를 가장 근원적인 인간의 정서로 안내해 준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
오소미 시인은 눈이 밝은 시인이다. 이는 그가 안과의사라는 점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대상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 안에서 섬세하게 형상을 포착하여 묘사하는 능력이 있다. 그의 시가 우리에게 맑고 투명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이와 연관되는 것이다. 시란 이미지로 그린 언어의 그림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시에서 다양한 이미지들과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오소미 시인의 시적 주제는 크게 사랑이라 규정할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가치는 사랑으로 통하고 사랑만큼 큰 주제는 없을 것이다. 오소미는 이 세상의 삶이 고통이나 시련으로 다가와도 등 돌리지 않고 그것을 향해 두 팔 벌려 끌어안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 생이 모질수록 시인은 그것을 향해 더 큰 가슴을 열고 사랑으로 다가간다. 그 결과로 시인의 사랑은 우리를 향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다음의 시에서 두드러진다.
사랑하는 일은 / 홀로 가는 / 길 // 먼 길도 말없이, / 영원토록 / 되돌아서지 않는 / 길 // 어쩌다 / 외로운 사람끼리 / 어깨를 마주한 채 / 따뜻이 내미는 손길 / 사랑하는 일은 / 지평선 뵈지 않는 / 쉬어 갈 수 없는 / 길 - <길 1> 전문
그러나 오소미의 시에서 사랑은 단순히 인간에 대한 사랑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에게 사랑이란 궁극적으로 우리 생의 절대적 가치에 대한 사랑으로도 확대되어 간다. 이점 또한 오소미 시인의 시가 도달한 성취인 것이다
내 속에서 일하고 있는 당신 / 내 속에서 숨쉬고 사는 당신 / 내 속에서 침묵하고 있는 당신 //
가끔은 제발 / 두 손으로 얼굴 받쳐 들고 / 빠안히 내 눈동자 속을 / 들여다 봐 주세요 //
당신이 그래주지 않는다면 / 외로움의 무게에 / 내가 무너질까 두렵거든요//
내 속에서 나를 보고 있는 당신 / 내 속에서 나와 얘기하는 당신 / 내 속에서 나를 사랑하는 당신 - <당신께> 부분
위 시에서 살필 수 있듯이 오소미의 사랑은 종교적 차원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 시에서 ‘당신’이란 하나님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을 향한 그리움의 마음은 감성적인 언어로 애틋함을 담고 있다. 위 시에서 오소미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어려움도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이점에서 그의 사랑은 생의 고통과 시련을 인내와 지혜로 넘어선 결과라 할 것이다. 이번 시집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별’을 노래하고 있는 점에서 그의 시는 한국 전통 서정시의 정서적 원형질과 서로 통하고 있다.
오소미는 이번 시집에서 ‘파도’를 통해 우리 생의 역설적 인식을 펼친다. 앞으로 이러한 인식이 깊이를 더해 감으로써 그의 시는 깊어지고 높아질 것이다. 아래의 시는 <파도>의 전문이다.
파도가 / 물에 젖어 있는 것을 /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파도가 / 물에 젖어 / 떠내려 가는 것을 /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파도가 / 하얗게 죽어가는 것을 /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그리고는 / 투명하게 소생하여 / 또 다시 젖는, / 파도를 /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영원히 / 눈물에 젖어 있는 / 그런 / 나의 파도를 /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 시에서 ‘파도’와 ‘물’의 관계는 ‘인간’과 ‘삶’의 관계로 이어진다. 파도는 다시 젖을 수 없다. 그것은 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오소미는 파도의 숙명을 역설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인간의 비극적 속성을 철저히 끌어안는다. 태어나면서 우리는 산다. 그러나 삶은 절대로 완성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파도란 물의 수평과 안정을 깨트릴 때에만 나타난다. 그러므로 파도와 물은 하나의 뿌리로 이어지지만 서로가 대극적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그게 우리의 생일 터이다.
오소미 시인은 사랑의 시인이다. 앞으로도 그는 감성의 언어로 그리움과 외로움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사랑을 노래할 것이다. 탈무드에는 글자 한자를 빠트리거나 더하는 것이 우주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만큼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시를 일러서 언어의 최고 경지라 할 때 앞으로도 오소미는 각고의 노력으로 모국어를 갈고 닦아 더 빛나는 언어의 광채를 펼쳐줄 것을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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