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샌프란시스코 교당 일요일 법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교도님들이 강연을 합니다. 이번 주 일요일에 한 젊은 청년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했지요.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이란 시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삶에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는 삶의 문제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비단 시인만이 아니었지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마음 안의 욕심들 그리고 사회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잣대에 맞추어 내 안의 이기심과 질투를 극대화하여 지금껏 달려오기만 하였지요. 그리고 이 시구를 읽는 순간, 우리는 ‘아, 이러한삶의 방식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스스로 되묻게 됩니다.
나를 정의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바로 이 순간 나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몸과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게 몸과 마음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몸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건강한 몸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말이 될 수 있겠지요. 건강한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하고, 잘 배설해야하고, 잘 숨 쉬어야 하고, 잘 자야하고, 잘 움직이고, 잘 운동해고, 잘 일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잘’이라는 말은 바로 ‘중도에 맞는, 적당한’ 이라는 수식어로 바꿀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 ‘적당함’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말은 다시 ‘내게 필요한 만큼’이라는 말로도 바꿀 수 있는데, 이 적당함을 지키기가 보통 어렵지가 않습니다. 바로 욕심 때문이지요. 항상 더 먹기를, 더 쓰기를, 더 좋은 것을 원하는 우리 마음 가운데 욕심이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적당히”를 잘 지키려면 욕심에 대한 성찰, 참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바로 다른 말로 지혜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 지혜가 없으면 중도에 맞는 일상생활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바로 마음을 공부하는 데에서 나옵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게 되면 욕심을 잘 다스리게 되고, 욕심을 잘 다스리게 되면 밖으로 행해지는 모든 육근의 작용들이 절도에 맞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마음에도 잘 먹고, 잘 쉬고, 잘 움직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마음의 양식은 마음을 고요한 가운데 쉬어주는 것입니다. 본래 참 마음은 고요하기 때문에 그 고요함의 시간으로 양식을 취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가득 채우고 살아갑니다. 욕심으로, 생각으로, 걱정으로, 이런 것들을 일러 부처님께서는 번뇌 망상이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번뇌 망상을 놓고, 비우고, 쉬어주고 함이 바로 마음의 양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양식을 취한 마음은 고요한 가운데 중도의 길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그 ‘적당히’를 지키면서 살아가게 되지요. 그 중도를 아는 지혜로 필요한 때에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이고, 잘 운동하고, 잘 일하고, 그리고 잘 쉬어주면서 살아감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지금이 순간 내 마음은 무엇으로 가득한가를 살펴봅니다. 오늘도 원래 가을 하늘처럼 텅 비어 고요하고 맑은 이 마음으로 모두가 살아가길 염원하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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