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느끼게 하는 가을, 아침 일찍 공원을 드라이브해 본다. 유난히 맑은 공기, 눈부신 햇살이 가슴을 뚫고 대기에 투명한 스펙트럼을 반사한다. 선선한 공기, 숲에서 듣는 음악은 유난히 싱그럽다. 그래서 숲의 나라 독일에선 음악이 그처럼 융성했던 것일까. 숲의 푸르름에 몸을 맡기고 어디론가 멀리 내달리고 싶은, 어쩐지 음악이 절실해 지는 계절이다.
싱그러운 햇살, 아침에 듣는 음악은 역시 브람스가 최고다. 그 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 소녀의 감성을 소유했기 때문일까. 브람스의 음악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내성적이며 부드럽고 포근하다. 숲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었을까. 넉넉하면서도 푸르고, 싱그러우면서도 포옹력이 느껴진다. 그러나 너무 많이 듣지는 마세요. 소녀의 감상으로 침식, 중성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브람스와 닮았지만 용맹스런 숲의 음악도 있다. 소녀라기보다는 소년 같다고나 할까. 순수하지만 더 차갑고 강렬하다. 독일의 북쪽에는 숲이 우거진 또 하나의 나라 핀란드가 있다. 바이킹의 후예, 핀란드가 낳은 위대한 음악가 시벨리우스가 탄생한 나라이기도 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고 싶은 나라가 있다면 아마 핀란드일 것이다. 만년설로 덮여 있는 북극의 대자연. 남모를 이야기를 간직한 듯 짙푸른 호수들… 오로라, 하염없이 퍼붓는 눈발, 태고의 원시림, 침엽수…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갈망하는 피안이다.
핀란드의 영웅 시벨리우스는 음악을 인간 내면 깊숙이 간직된 영혼의 심오한 노래라고 보았다. 삶 속에서 경험되는 때묻은 시가 아니라 음악은 보다 본질적인, 내면의 순수라는 것이다. 핀란드의 자연환경에서 영향 받은 듯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자연의 향기가 가득 빨려 들어 오는 것 같다. 이세상이 아닌, 아니 저 먼 세계… 피안에서 들려오는 음악 같다고나 할까. 호수와 섬으로 둘러싸인 핀란드는 수많은 전설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그 중 ‘타피올라’, ‘투오넬라의 백조’ 등은 시벨리우스가 음악으로 만들었고 특히 민족 서사시 ‘칼레바라’의 전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유명하다. 극음악 ‘칼레리아 모음곡’ 도 그 중의 하나로 북극의 차가움, 때묻지 않은 싱그러움, 강렬하면서도 이내 폭발하고야 마는 감격, 이 모든 것이 영혼에 강렬한 도전을 안긴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노르웨이 등 외세의 압제에서 고통 받아왔고 이것은 그들의 음악, 예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 ‘핀란디아’, ‘칼레리아 모음곡’ 등을 듣고 있으면 마치 투사가 된 듯 강렬한 용기를 영감 받곤 한다. 마치 무기력한 생활에서 정신이 번쩍 드는 활기를 전달 받는 느낌같다고나할까. 그렇다고 (바그너처럼)이기적인 승리감, 잔인한 공격성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백 여명 이상 되는 거대 오케스트라에서 뿜어져 나오는 승리의 팡파르, 격정적인 고함 소리에도 불구하고 왜 일까? 아마 핀란드의 자연, 그 울창한 산림과 숲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순화, 자연의 소리가 스며있기 때문은 아닐까?
20세기에는 참으로 많은 음악적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불협화음, 인상주의 그리고 시벨리우스의 음악이다. 쇤베르크나 스트라빈스키 등이 내놓은 불협화음은 20세기의 음악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지만 북극의 강렬한 풍토(시벨리우스)까지 변화시키진 못했다. 모진 기후, 원시림… 피안의 안개, 신비한 호수들… 이런 것들이 그들만의 세계를 지켜냈기 때문이었을까. 가장 후지면서도 낙후된 변방의 음악… 그러나 겉은 낡았지만 내면까지 낡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대음악의 그 혼란스러운 폭풍우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조국 핀란드의 그 순수한 소리를 전한 시벨리우스의 음악에 전세계의 음악인들은 열광했고,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연주인이 선호하는 최고의 음악가로 우뚝 선 사람이 바로 시벨리우스였다.
기질적으로 시벨리우스는 영국이나 독일쪽에 가까웠고 어딘가 청교도적인 어두움과 무거움이 교차하고 있지만 극음악에 들어가보면 바이킹의 후예 같은 용맹함이 풍겨져 오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 중의 하나가 유명한 모음곡 ‘칼레리아(Karelia)’로서 이 곡은 핀란드 칼레리아 지방의 이야기를 그린, 야외 극음악으로 칼레리아인들이 숲을 행진하는 행진곡 풍으로 작곡되었다. 4곡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중 서곡과 인터메조, 알라 행진곡 등은 모두 바이킹의 활력, 싱싱한 숲의 활력이 느껴지는 상큼하면서도 야성적인 명곡이다.
숲은 인간의 어머니, 그 대자연에서 사람들은 음악을 느끼고 그 침묵하는 생명력에서 영원한 고향을 느낀다. 숲은 자연의 시작, 숲으로 가자. 숲의 숨소리에 마음을 맡기고, 푸르름이 약동하는 시벨리우스의 교향시들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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