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만에 여자들이 즐겁게 볼 만한 영화를 봤다. 연기력에 있어서는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메릴 스트립이 유명 요리사 Julie를 맡아 주연했고, 에이미 아담스가 그녀의 레서피를 요리하는 Julia로 분한 영화 ‘Julia and Julia’가 바로 그 영화였다. 실제의 두 가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화 되었는데, 요리에 관심있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길만하다.
외교관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프랑스로 이주해 무료한 나날을 보내다가 유명 요리 학교 Le Cordon Bleu에서 요리 과정을 이수하고, 미국인들에게 기초적이고 맛있는 프랑스 요리법을 처음 소개한 책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의 저자인 Julie Child 와 , 그녀의 요리책에 나오는 524 가지 레서피를 365일 동안 만들면서 벌어진 일상의 에피소드와 느낌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뉴요커 Julia, 이 두 여자들의 음식과 요리에 대한 열정이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져서 영화 상영 두 시간 동안 즐거웠다.
냄비들이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벽에는 온갖 후라이팬이 걸려 있는 프랑스의 부엌과 맨하탄 스튜디오의 좁은 부엌에서Julie 와 Julia 는 영화 내내 썰고 지지고 볶고 굽고 삶는다. 그리고 그들은 정성을 다해 요리한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즐겁게 나누면서 행복해한다.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감상하다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은 모두 비슷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에서 그녀들의 모습은 부엌에서 분주하게 맛있는 것을 만들어 가족에게 내놓는 우리의 어머니들, 갓 결혼해서 남편을 위해 요리를 시작한 새내기 주부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도 요령이 생겨서 이것 저것 후다닥 쉽게 만들어 내지만, 신혼 초에는 밥 세끼를 차리는데 그야말로 하루가 걸리기도 했었다. 게다가 식재료들을 다룰 때에는 재료에 따라 얼마나 세심하게 다루어야 제대로 된 모양의 음식이 나오고, 먹을 때는 맛있지만 요리하기 싫은 재료들은 왜 그리 많은지……생닭의 앞과 뒤를 구별 못해 닭의 배를 갈라야 하는데 왠 닭이 이리도 질기냐면서 통뼈가 붙어있는 등을 힘겹게 가른 적도 있었고, 게찌개를 끓일려고 마켓에서 사온 살아있는 싱싱한 blue crab들이 바가지에서 기어나와 부엌 바닥을 돌아다니는 바람에 비명을 지르며 남편 퇴근까지 어린 아이들과 방으로 피신해 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요리할 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고 꼭 필요한 조미료는 ‘사랑과 정성’이라고 했던가? 힘이 들지만 맛있는 요리를 해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려는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음식은 맛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는 도를 닦기 위해 머리 깍고 홀홀 단신으로 산에 들어간다지만, 주부들은 집 구석에서 부엌칼을 갈고 아이들 우는 소리를 들으며 도를 닦는다. 힘은 들면서 도무지 표가 나질 않는게 집안일이고, 반찬 몇 개 올라오는 밥상 하나 차리기 위해 부엌에서 얼마나 오래 서서 씻고 다듬고, 불 앞에 있어야 하는지 세상이 알까 싶다.
살아가는게 가끔씩 지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늘 생각나는 건 엄마가 나를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차려주었던 따뜻한 밥상이다. 내가 매일 누군가의 밥상을 차리다보니, 우리의 어머니들도 분명 그녀들을 위해 정성스런 밥상을 차려주던 엄마가 많이 그리웠으리라는 생각이, 마흔 고개를 넘은 이제서야 든다.
아이들과 긴 여름방학을 보낸 후라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 참 밥하기 싫었었는데, 영화 속 그녀들의 삶에 대한 열정이 나에게도 전해졌는지 나도 다시 충전이 된 느낌이었다. 어쩌겠는가? 인생은 ‘밥심’으로 사는 거고, 다 먹고 살자고 우리는 이렇게 아둥 바둥 열심히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니……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또 무엇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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