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막다른 골목… 가을이 찾아왔다. 선선한 바람이 낙엽을 몰아가고 거리엔 가로등 만이 차가운 불빛을 대기에 뿌리고 있다. 누구일까? 가로등 아래 성성이는 저 그림자는… 먼 길 가는 영혼일까… 아니면 우리가 걷지 못했던 아스라한 추억… 가을 길 걷는 나그네일까.
사람은 한 평생 길을 걷는다. 누구에게나 외줄기 길… 돌아 갈수도, 두 길을 걸을 수도 없다. 가을은 문득 우리가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걷지 못했던… 아쉬움과 회한의 지난 날을 돌아보고,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영혼의 정화와 감사를 노래하게 된다. 그러기에 가을은 누구에게나 정답고, 자연을 사랑하고, 노래를 사랑하게 되는 예술의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을 느끼게 하는 예술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을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아마 밀레의 ‘저녁 종’ 일 것이다. 종교적 경건함, 자연에 대한 감사가 절로 솟아나는 이 그림은 죽은 아이를 땅에 묻고 절규하는 부모 심정을 묘사하고 있다고 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는데 아무튼 보는 이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안기는 이 그림이야 말로 삶의 숙연함,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솟게 하는 가을의 마력이 있는 명작이라할 것이다. 고호의 밀밭, 해바라기 등도 가을 정서가 짙게 풍겨오는 명작들이고 음악에서도 쇼팽의 ‘즉흥환상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곡들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진한 가을 정서가 느껴오는 곡들이다.
요즘 FM 클래식을 듣고 있으면 간혹 가을 정서가 느껴지는 영화 음악도 들을 수 있는 데 ‘Out of Africa’, ‘Once upon a time in America’ 같은 주제음악 등은 꽤 서정미 넘치는 명작들이다. 1941년에 만든 영화 ‘위험한 달빛’의 주제곡 같은 작품은 이제 영화음악이라기 보다는 클래식에 가까울 만큼 가을을 대표하는 명 피아노 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명한 폴란드 피아니스트의 영국 공군 활약상을 담은 이 작품은 ‘바르샤바 협주곡(Warsaw Concerto)’이라고도 불리우면서 콘서트 연주 용으로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바르샤바 협주곡’이 그렇듯 좋은 음악은 영화의 감동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장면장면을 생생하게 살려준다. 만약 음악이 없는 영화가 있다면 그만큼 삭막한, 마치 사막처럼 죽은 영화로 변하고 말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정경, 눈부신 빛의 풍경을 연상시키지 못하는 음악이 있다면 그 음악은 그만큼 죽은 음악일 것이다. 음악은 순음악이라고하여 철학적 논리를 연상시키는 절대음악이 있지만 대부분은 2악장 등에 안단테, 아다지오(느린 악장) 등을 삽입, 서정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주고 있다.
서정적 발라드 풍의 쇼팽의 ‘이별곡’, 바다르체프스카의 ‘소녀의 기도’ 등을 듣고 있으면 한국의 풀빵 냄새가 가득 풍겨온다. 아마도 음악을 듣던 시절의 순수했던 추억… 그 거리의 아련한 추억이 배여 있기 때문이겠지만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등에서는 한국의 가을 단풍이 진하게 배어나기도 한다. 낙엽이 떨어지고 마른 나뭇가지만 앙상한 가을 동산, 관악산 기슭의 뒷동산은 졸졸 시냇물을 따라 작은 암자… 그리고 그리운 얼굴들이 있는 곳이다. 지금은 변해 없어지고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그러나 가고 싶으면 언제나 가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음악이 그것이다.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은 좀더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마치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인공들처럼 건들이고 싶지 않은 상처라고나할까. 뭐 대단한 실연, 사연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 작품이야말로 미국에 갓 이민와서 무척 외로울 때 사무친 아름다움으로 다가 오곤 하던 곡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울한 광시곡’이라는 제목으로 한 번 쓰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만난 그녀는 찐빵처럼 동그란 얼굴을 한 동남아 여학생이었다. 눈이 크고 맑은 것이 어린애처럼 순수해 보였는데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좋아한다는 표현이 어색하고 수줍었는지…. 그녀는 늘 말없이 내 옆자리에 앉곤 했고 그것은 외로움이 강했던 만큼이나 두려움이었자 또 금지된 장난이기도 하였다. 찬란했던 순간… 그러나 꿈은 멀고, 현실은 암울한 광시곡이었다.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예술이 또 그만큼 아름다울 수 있었으리라. 당시 괜스레 깊은 상실감과 감상에 젖어 방안에 처박혀 라흐마니노프를 미치게 들었는데 현실이란 참 많은 것으로 아프게도 하고 또 아름답게 하기도 하는 법인 것 같다.
가을에는 음악이 영원히 살아있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가을이 되면 추억의 음악… 리처드 애딘셜,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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