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뒷담은 학교 운동장하고 맞닿아 있다. 그곳에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기러기들이 온다. 방학중이라 텅빈 운동장에 매일 와서 머물다가, 어느날 간다. 철새들인 것이다. 미국 와서 보니, 불교 신도들 중에도 철새 같은 이들이 많다. 잠시 왔다가 간다. 오는 이유도 가는 이유도 알고 싶지 않다. 그저 철새 보듯 바라볼 뿐이다. 온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떠나는 이유는 진정한 불자가 아니기 때문이란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절에 올 때, 부처님 법이 아닌, 다른 뭔가 바라는 것이 있어 온 사람들은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떠난다. 철새들이 먹이나 환경이 적합지 않은 걸 알면 다시는 그 장소에 오지 않듯이. 떠난 이들 중에는 더러 이 중이 ‘오지 마라’ 한 이들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지 마라’ 한 것은 아니다. 너무나 훌륭하여 부처님께서 만드신 불교를 자기 뜻대로 고쳐보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불교도 좀 재밌게 하면 안될까요’ ‘이렇게 힘들게 말고, 쉽게 참선하는 법이 있을 텐데요.’ ‘불교는 제 생각에 종교는 아니고 철학인 거 같아요.’ 등등등.
이런 사람들에게 이 중은 그런다. ‘나는 죄송하게도 그런 불교를 모르니 당신을 가르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그런 곳이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들은 ‘스님이 자비심도 없이 머 저러냐’ 하고 샐쭉해서는, 가서 다시는 안 온다. 그리고 자초지종 다 빼고, 스님이 ‘오지 마라’ 해서 절에 가고 싶은데 못 간다고 소문내고 다닌다. 그러거나 말거나다. 철새들은 언젠가는 떠나므로. 잡을 수도 없고, 잡고 싶지도 않으므로.
모두가 아다시피 불교는 자비의 종교다. 이런 사람이든 저런 사람이든 다 보살심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오해 없기 바란다. 그 자비도 불교 안에서의 얘기고 불법 안에서의 얘기다. 혼내도 불법 안에서 혼내고 사랑해도 불교 안에서다. 스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 없이, 스님의 자비만 바란다면, 학교는 안 가고 학교 졸업하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삼귀의가 불교의 첫걸음이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 그런 이들이 아니더라도, 이 중은 불교 하다가 가는 이를 잡을 힘이 없다. 스님도 신도들도 이 시대엔 불교 하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스님은 스승님에서 나온 말이다. 스님이 스승의 자리를 바로 지킬 때, 비로소 불법이 바로 선다. 그렇기에, 가더라도, 이 중은 매일 불자들을 바로 서도록 채찍질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심으로, 그들이 제발 간다고 하지 않기를, 부처님을 떠난다 하지 않기를, 부처님께 엎드려 발원한다. 왜냐하면 이 미국 땅에서 불종자가 끊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불자가 아니고서는 후세에게 바른 포교를 할 수 없다.
이 중도 띵까띵까, 신도들이랑 재밌게 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불교에 무슨 보탬이 된단 말인가. 살다가 사람 때문에 더러 힘들 때는 <법구경>을 왼다. “남이 내 뜻대로 순응해주기를 바라지 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응해주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이웃을 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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