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철 목사(은혜와 평강교회 담임)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는 2008년 1월 13일자의 국민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대운하와 문명사적 소통>이란 제하에 이명박 정부가 선거 시에 공약한 프로젝트의 국가적 현안을 다룬 바 있다. 그는 창세기의 에덴동산 기사를 통해 소통의 상실을 언급하고 소통은 종교적 차원만이 아니라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대사임을 로마의 도로망 확장과 중국의 만리장성 건설을 예로 들어 설파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소통을 이루고 인간상호 간의 수평적인 소통을 이루신 유일한 소통자로 언급하기도 했다. 오 목사는 대운하의 본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문명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수려한 문장과 비장한 어투로 독자의 심금을 두드린다. 그의 시각이 옳음은 소통의 상실에 대한 성경적 배경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통자라는 이해의 측면이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문명사적 접근에 해당할만한 숙고나 고찰이 전혀 없었으며, 수사학적 강조와 낭만적인 호소로 일관했다. 국론통일을 위해 기여하겠다는 충정은 이해하지만 그가 예를 든 역사적 사실들은 한 쪽 시각에서 바라본 단견이었음이 유감스럽다. 그가 지니고 있는 대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제호에 걸맞게 좀 더 깊이 있는 통찰과 함께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는 아쉬움을 갖는다. 그의 칼럼에서 발췌한 인용 부분이다.
“소통은 국가의 흥망을 좌우한다. 로마는 사람과 자원의 소통을 촉진하는 도로망 건설에 힘을 쏟았다. 반면에 고대 중국은 사람의 왕래를 끊는 거대한 방벽인 만리장성을 쌓아올리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그 결과 로마의 도로망은 팍스로마나로 이어진 데 반해 만리장성은 중국에 결코 팍스(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대운하의 본질을 제대로 보려면 문명사적 접근이 필요하다. 물길이 통하면 정신이 통하게 마련이다. 대운하가 한국 전체를 관통하면 산간벽지에까지 이어지는 물길의 소통으로 우리 민족의 암적 존재인 지역분열의 종식과 통합을 이루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대운하에 흐르는 소통의 시대정신이 북한과 연해주를 관통해 우리 민족의 발원지로 일컬어지는 중앙아시아의 해발 1609m 산상에 있는 드넓은 이시쿨 호수에까지 뻗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오래 전에 크루즈를 타고 나일강 주변에 있는 역사적인 유적지를 탐방하는 여행을 하면서 이집트는 나일강이 먹여 살린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인천공항에 내린 외국인이 사통팔달의 대운하를 항해하면서....... 청풍명월 같은 1000년의 기품 있는 역사를 보고 이 땅과 정신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면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강에서 낙동강으로, 낙동강에서 영산강으로 이어지는 대운하는 거대한 토목공사를 넘어 우리 민족의 역사와 창의성과 열정이 어우러져 동양의 예지와 서양의 합리성이 고도로 결합된 현장이 돼야 할 것이다....... 고속도로가 인위적 소통이라면 대운하는 문명사적, 정신사적 소통이 돼야 할 것이다. 대운하가 국력 결집과 우리 민족의 정신사적 소통을 이루는 생명의 물길로 자리 잡기를 소원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질문이 솟구친다. 로마의 도로망은 과연 팍스로마나를 이루었던가? 그 광활한 도로로 말을 달리며 유럽 전체를 피로 물들인 침략의 역사는 어떻게 저울질해야 하나? 로마군단이 지나간 도로 양 옆에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루었어도 팍스로마나를 운위할 수 있을까? 중국의 만리장성은 이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세운 국책사업은 아니었을까? 로마의 도로망 건설에는 자원의 소통이라는 긍정적 면만이, 중국의 만리장성 축성에는 사람의 통행을 단절시킨 부정적 면만이 있을까? 물길이 통하면 과연 정신이 통할까? 한 사람의 정신세계는 세계의 모든 물길을 합한 것보다 더 깊고 깊은 심연임을 왜 모르는 것일까? 하물며 정신의 소통은 한반도를 흐르는 모든 물길을 하나로 통합한다 해도 이룩할 수 없는 지난(至難)의 과제다. 한반도를 관통하는 대운하는 민족의 암적 존재인 지역분열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 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만 있다면 대운하 아니라 그보다 더한 일도 이 민족은 할 수 있으리라. 국토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할지라도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민족대통합을 이룰 수만 있다면 그 뉘라서 감히 거역할 것인가? 과연 대운하 사업이 민족적 통합을 이루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대운하를 열 번 뚫어 한반도를 사통팔달하게 만들어도 민족적 통합이라는 이상이 요원한 일임은 지난 역사가 우리에게 외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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