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사람을 철학자로 만든다. 바다(가)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느낄 수 없겠지만 매일 태평양의 바람을 맞으며, 바다 안개 속에 파묻혀 수년을 살다 보니 인생의 염기라고나할까, 우울한 사고가 정신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바다에 나가면 일시적으로 청명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지만 금세 외로워지고 철학적인 고독이라고나할까, 괜스레 낭만적인 기분에 젖어 음악을 듣게 되는 때가 많다. 바다를 느끼게 하는 교향악은 참으로 많다. 드뷔쉬의 ‘바다’, 멜델스존의 ‘휑갈의 동굴’, 바그너의 ‘방랑하는 화란인’, 림스키콜사코프의 ‘세헤라자데(신바드의 모험)’… 비제의 ‘진주조개잡이’ 등… 모두 바다의 서늘한 낭만이 밀려오는 곡들이다. 특히 비제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태고의 원시성이라고나할까, 어딘가 비애에 젖은 듯한 고독이 강하게 밀려오는 것이 마치 무인도에라도 당도한 느낌이 들곤 한다.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음악은 쉽고도 아름답다. 널리 알려진 조곡 ‘아를의 여인’ 중에 나오는 ‘미뉴엣’을 들어보자. 플륫의 자연스럽고 경쾌한 선율은 마치 어린 목동이 좋아라 피리를 불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아름다운 선율은 너무 순수해서 마치 동요를 듣고 있는 착각이 들곤 하는데, 비제는 이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수없이 작곡했음에도 살아 생전에는 자신의 성공을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재능은 있었으나 시대를 잘못 타고난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력하나만큼은 특출해서 약관 20대에 로마 대상에 두 차례 입선했고(한번은 대상), 25세 때는 오페라 공모에서 ‘진주조개잡이’가 당선, 일찍부터 남다른 천재를 보였다. 문제는 그의 음악이 아름다웠지만 시대적으로 너무 겉돌았던 점에 있었다. 비제는 바그너처럼 거창하거나, 혹은 세기말적인 염세주의가 되지도, 또는 프랑스 사회가 요구하던 코믹 오페라 작곡가도 되지 못했다. 마치 자기 세계 만을 위한 작곡가였다고나할까.
아무도 오지 않는 무인도는 황량하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이 없을 뿐이다. 이런 류의 예술(가)은 다소 불행하지만 태고의 순수성을 간직했기에 영혼에 청량음료와 같은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칼멘’과 함께 유명한 비제의 조곡 ‘아를의 여인’(1부) 중의 ‘아다지오’를 들어보자. 마치 알에서 방금 부화한 듯한, 너무도 맑고 깨끗한 선율에 영혼이 미역감는 듯한 환각에 빠지곤 한다. 마치 외로운 무인도에서 낙원의 망중한을 즐기는 듯한 환각으로 이끌어간다고나할까.
인생에서 최고만이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비제는 결코 박수 받을 만한 작곡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비제야말로 음악에서 ‘명성’, ‘성공’이라는 단어를 뺀다면… 바로 클래식이 말하려는 모든 것을 소유한 작곡가였다. 최고(명성)는 아니지만 최상의 음악, 많지는 않지만 뛰어난 작품성… 비제는 약관의 나이에 오페라를 작곡했고 ‘교향곡(C장조)’, ‘아를의 여인’ 등 재능을 보였지만 줄거리가 비극이어서 평판 받지 못했고, 심혈을 기울인 마지막 작품 ‘칼멘(오페라)’ 역시 실패로 끝나자 좌절 속에서 37세로 요절하고 말았다.
비제는 너무 일찍 요절한 것이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치명적이었다. 일찍부터 로마대상에 2차례나 입상, 미래를 약속 받았지만 ‘칼멘’이 그렇듯 특출하지만 비극적인 내용, 중압감 때문에 외면 받았다. 특히 ‘칼멘’은 그가 모든 정열과 재능을 다 쏟아부어 완성한 작품이었지만 비극적인 내용을 꺼리던 파리의 음악계에서 거의 버림받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 발랄하고 도발적인 작품은 곧 크게 조명 받게 됐고, 특히 당대의 니체 같은 철학자는 ‘칼멘’의 위대성을 꿰뚫어 보고 ‘칼멘 예찬론’을 펴며 독일음악에 정면으로 맞짱을 뜨기도 했다.
사람은 원천적으로 잡초보다는 꽃을, 소음보다는 음악(노래)를 사랑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꽃이라도 향기 없는 꽃이 있고 같은 음악이라도 시가 되지 못하는 음악이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어떤 것일까? 아마 비제의 ‘꽃노래’(‘칼멘’중)처럼 청초하고 순결한 아름다움을 머금은 꽃일 것이다. 꽃 중에 꽃… 그 누구에게도 보여진 바 없이 내 가슴 속에서 말라비틀어진… 그대가 던져 준 이 꽃이여… 오페라 속에서 돈 호세가 부르는 ‘꽃노래’야 말로 미처 피지 못하고 아쉽게 사라져간 비제의 영혼, 비운의 작곡가… 비제를 말해주는 모든 것일 것이다.
‘허영’과 ‘예술’… 두 개의 얼굴을 한 인생의 야누스다. 살아서 떠들썩하게 스포트라잇(허영)을 받느냐, 아니면 가난과 고독, 이상을 좇다가 죽어서 감동(예술)을 남기느냐…. 인생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그리움을 추억하며, 비제의 ‘꽃노래’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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