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호수에 닿을 때 물결이 일어나듯이 우리 마음은 호수와도 같이 잔잔하다가도 바깥 경계에 닿게 되면 파문을 일으키기도, 때로는 거센 파도를 일으키기도 한다. 동양에서는 마음을 잘 다스려 인격적으로 완성에 이르는 길을 수양이라고 했고 공자는 “시를 읽음으로써 바른 마음이 일어나고, 예의를 지킴으로써 몸을 세우며, 음악을 들음으로써 인격을 완성한다”고 했다. 즉, 옛사람들은 깨지기 쉬운 호수와 같은 마음을 음악으로서 그 본래의 착하고,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기르기에 힘썼던 것이다. 한국을 한 달간 방문하는 동안 내 마음에는 잊지 못할 두 음악이 남아있게 되었다. 하나는 어머니가 보여주신 무언의 음악이요, 둘은 아버지의 음악이다.

어머니의 마음은 고요하여 내가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다. 소리 없는 마음의 소리는 따듯하고, 아늑하고, 평온하다. 그래서 온갖 소리를 다 받아들인다. 아프면 아프다고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고, 좋으면 마냥 좋아할 수도 있다. 내가 아플 땐 나보다 더 아파하시고, 당신이 아플 땐 혹여나 내가 걱정할까 그 아픔을 숨기신다. 어머니는 나의 부처님이시다. 그래서 어머니의 소리 없는 음악에서 새 생명을 얻는다.

아버지께서는 자식을 위해서 늦은 공부를 시작하셨다. 아버지께서 그 공부의 덕을 보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저절로 자식이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을까 해서 시작하신 것이다. 그리고 작년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바로 이어 아버지의 다섯 번째 대금 독주회를 준비하셨다. 일 년 동안의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 준비의 결정체를 세상에 내보이셨다.

한 시간 여 동안 진행이 된 아버지의 음악. 영산회상의 전 바탕을 홀로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것은 홀로 사막을 걷는 일과 같아 보였다. 홀로 연주하여 단조로울 듯도 하나 마치 관현악처럼 한 음 한 음이 각각의 새로운 악기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오케스트라의 화려함도 다 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 음악은 한 시간 여 동안 모든 관객을 대금 소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는 위대한 힘을 발휘하였다.

자연 그대로의 소리는 자연스러운 가운데 거친 감이 있다. 그런데 그 재료를 사람의 공력으로 갈고 닦게 되면 그 소리는 예전 소리와 다른 차원 승화된 소리를 내게 된다. 모든 악기가 그러하겠지만 모든 재료를 자연에서 얻어서 만드는 한국의 악기는 더더욱 길들이기가 힘들다. 그리고 악기는 정직하여 길들인 만큼 그 성숙미를 자아낸다.

자연의 바람에서 공명되는 대나무 소리는 그냥 귓가에 스쳐가고 만다. 대나무소리가 익게 되면, 그 소리는 마음의 저 심연까지 파고드는 깊은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선율을 타고 느릿하게 시작하여 빨라짐을 느끼지 못하고 어느덧 빨라져있을 때, 사람의 어깨와 고개는 절로 선율에 따라 춤을 추게 된다. 학이 두 날개를 펴고 춤을 추듯, 마음의 물결도 그와 같이 춤을 춘다. 그러면서 공자의 말처럼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절로 자연스럽고 활발하면서 절도에 맞도록 한다.

어머니의 마음은 소리 없는 음악이다. 그 소리 없는 음악 속에 나를 마음껏 키우고 드러낸다. 아버지의 음악은 폭풍우 뒤의 고요처럼, 고요한 듯하나 그 뒤에 삶의 치열함이 살아있고, 평화로운 듯하나 그 뒤에 삶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낸 인고의 세월이 숨어 있다. 어머니의 음악과 아버지의 음악으로 내 마음을 성숙시켜간다. 인격의 완성이 음악에서 이루어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