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처, 고향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누구나 기분이 좋다. 옛 시골 할머니의 마을에 있던 그 집 앞을 지날 때도 그랬다. 늘 어딘가 신비했다. 진한 갈색 모자를 뒤집어 쓴 초가지붕, 흙 담장 아래까지 뻗은 감나무… 고추 잠자리가 나는 초저녁 하늘, 매케한 장작불 냄새… 이런 것들에게서는 마치 감추어진 옛 이야기가 풍겨져 나올 것 같았다. 이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진, 보편적 고향 정서가 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너와 나의 고향… 우리는 모두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리라.
음악만큼 고향의 정서를 표현해 주는 감정 전달 수단도 없을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영혼은 그러므로 고향 같은 순수함을 사랑하는 영혼이다. 적어도 음악에 젖어 있는 순간만은…. 그러나 음악에서 다소 음탕한 요소를 표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바로 R. 쉬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성서(마태복음)에 나오는 헤로디아(왕비)의 딸(살로메)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조금 과장되게도 ‘살로메’가 세례 요한을 사랑한다는 내용이다. 그 중에서도 ‘일곱 베일의 춤’으로 알려진 살로메의 춤은 제작자에 따라 살로메가 전라의 몸을 드러내는 쇼킹한 장면을 연출, 충격을 주기도 하는데 이 파격적인 오페라는 초연(1905년)당시 엄격한 검열이 필요할 만큼, 당시로선 퇴폐의 대명사였다. 문제는 선정적인 내용에도 불구, 이 작품(선율)이 엄청나게 아름답다는 데 있었다.
이 작품은 관현악이 탁월하여 피날레 장면 등은 발췌되어 연주하기도 하는데, 80년대 초 세이지 오자와 지휘의 보스턴 심포니 연주로 감동을 받았던 작품이다. 당시 이처럼 황홀경으로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선율도 있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마치 고향과 같은 서정미를 느꼈다고나할까? 물론 이것은 마음의 고향… 음악이 지향하는 아름다움의 실체… 그 본질적인 영혼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음악과는 달리, 오페라의 내용은 농염한 관능미… 특히 살로메가 피가 뚝뚝 흐르는 세례 요한의 잘려진 목에 키스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소름이 돋도록 오싹한, 묘한 탐미적 일탈의 경지로 이끌어 가곤 한다. 이 이색적인 작품은 오스카 와일드가 각색한 희곡으로 당시 보수사회였던 영국에선 출판이 금지되었고, 프랑스에서 출판된 뒤 오페라화 되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오케스트레이션, 연출감각 등으로 극찬을 받았지만 종교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혀 수없이 공연되는 사태를 빚기도 하였다.
성서 속의 헤로디아(살로메의 어머니)는 남편 헤로데 필립보를 살해하고 그의 동생 헤로데 안티파스와 재혼한 인물이다. 아버지였던 헤로데 1세의 유다 왕국을 분할해서 통치했던 예수 생존 당시의 인물들로서, 신약성서 마태복음 등에 나온다. ‘살로메’란 이름은 당시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의해 정식으로 알려졌고, 이후 수없이 많은 그림, 문학 등의 소재가 되어왔다.
R. 쉬트라우스는 철학적으로 무신론주의였지만 음악만큼은 신성시했는데 독일 전통 낭만주의에 입각한 아름다운 음악을 수없이 작곡, 지금도 열광적인 환영을 받고 있다. 그는 헤트비히 라흐만의 독일어 번역 ‘살로메’를 접한 뒤 즉각 오페라 작곡에 착수, 1905년에 완성을 보았고 타악기가 주도하는 현대적인 불협화음, 파격적인 오케스트레이션 등으로 일약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날리게 됐다. 이 작품은 SF 오페라가 이번 2009년 가을 시즌의 공연 작품으로 선정, R. 쉬트라우스의 팬들의 기대를 사고 있는 데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감동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오페라 ‘살로메’가 던지고 있는 명제일 것이다. 이 작품은 인간 주체의, 즉 탐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다소 쇼킹한 사랑이라고나할까, 인간 내면에 유폐된 관능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세례 요한을 사랑하는 음녀(살로메)를 통해 종교적 위선이나 선과 악의 구분에 메스를 가하고 있다. 과연 사랑 앞에 선과 악의 구분이 따로 있을 수 있을까? ‘살로메’라고 하는 다소 과장되고 실패한 사랑의 이야기는 희곡에서는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R. 쉬트라우스라 수놓은 비할 바 없는 아름다운 선율은 단순한 사랑의 절규를 넘어, 진정한 사랑이란 모든 것이 초월될 수 있다는… 예술의 극치를 선보이고 있다.
감동이 없는 예술(종교)을 예술(종교)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 빈자리는 공허한 상실감… 메아리만 남을 뿐이다. 세례 요한의 목에 입맞춤을 퍼붓는다는… 살로메의 이야기는 허구다. 그러나 단순한 관능적 일탈이 아니라 죽은 생명에 불을 붙이려는… 헛된 생을 바라보는 반항… 그 스파크일 것이다. 먼 길 돌아, 결국 황혼 앞에 설 수 밖에 없는 우리… 영혼의 피로가 엄습해 올 때… 죽음보다 아름다운… ‘살로메’의 절규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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