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가주 온 원불교 큰어른 승산 양제승 종사 SF교당 특별법문
“마음을 아는 것은 릴레이에서 바통을 받는 것
마음을 모르고 하는 공부는 바통없이 뛰는 것
분별심 주착심 놓고 경계마저 감사해버리면…”
“누구나 바라는 것, 무엇을 채우고자 하는 게 있을 건데, 제일 소중한 것이 있을텐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모다?” 5일(일) 오전 샌프란시스코교당(교무 양상덕, 윤선중), 원불교계 큰어른 승산 양제승 종사는 간략한 인사말 뒤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교당을 채운 40여명은 침묵했다. ‘참마음의 실체’를 주제로 귀한말씀을 들으려고 귀를 열어놓고 있다가 입을 먼저 열어야 하는 상황에 일순 멈칫한 듯했다. “공부는 주고받고 하는 것이제. 시원시원 대답 좀 해요.”
이윽고 어느 보살이 답했다. “생명이요.” 어느 거사도 답을 내었다. “자기의 소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미소를 띤 채 유심히 듣던 양제승 종사는 그 즈음에서 고리를 걸었다. “목숨이다 생명이다, 그렇다면 인자 무엇이 생명이냐? 말씀 좀 해보세요.” 또 침묵이 흘렀다.
종사는 문득 오른손 검지를 펴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일원상(一圓相)이라 불리는 원불교의 상징, 그 원과 같았다. “나, 자기가 아는 것, ‘아는 이것’을 뭣이라 그래요?” 굳이 물음이 아니었다. 바로 답을 내놨다. “마음이죠.” 그리고는 덧붙였다. “하나님이다 부처님이다 그러는 것도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생명 그 자체여. 그런데 마음도 모르고 산다 이거여. 그러면 어떤 것이 마음인가?”
주로 전북 진안 만덕산에서 일을 공부삼아, 공부를 일삼아 자신을 닦고 또 닦으며 후학들을 지도해온 양제승 종사는 두툼한 안경 너머로 좌중을 두루 살폈다. 마음의 실체가 궁금해 모여든 이들이 섣불리 답을 낼 리 없었다. 빙그시 웃으며 종사는 “공부를 할라면 마음부터 탁 알아놓고 해야 된다”면서 말의 물꼬를 살짝 틀었다.
자문자답이든 통상문답이든 종사의 법문은 일방주입이 아니라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져놓고 느낌표를 낚아올리는 식이었다. “그럼 일원(一圓)은 뭣이여?” 거기 모인 누구나 다 아는 일원상(一圓相)에서 상(相)을 덜어냈는데도 질문의 중량은 돌연 수백수천배로 무거워졌다. “뭣이여?” 누군가 나직히 경전에 나온 일원상의 진리를 외웠다. “그것은 너무 길다”며 “본성, 본래성품, 본마음, 참마음”이라고 동어반복 정리를 한 종사는 그게 정신이고 정신의 요지는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고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 요 사실만 깨달으면 된다”고 간추렸다.
비로소 법문의 중핵에 도달한 양제승 종사는 “대종사님은 눈 먼 봉사도 안심하고 갈 수 있도록 큰 길을 닦아놓으셨다”고 강조한 뒤 “정신만 가지고 ‘나’라 하는가, 육신만 가지고 ‘나’라 하는가, 둘이 합해서 ‘나’라 한다, 아는 이것은 형체도 없고 테두리도 없다, 갓도 없고 끝도 없다, 너도 나도 없다, 가고 오는 것도 없고 나고 죽는 것도 없다, 그것을 두렷하고 고요하다고 한다”며 “이것은 어떤 이론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잘라 말했다.
증명이 따랐다.
“분별성이 없다는 것은 분별하는 주체가 없다는 거여, 눈이 보고 귀가 듣고 그래요?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는 것이지, 그러면 (보고 듣는 것을) 뭣이 그렇게 아느냐? 찾아봐서 이것이다 해서 내놓을 게 있어요? 없으면 아무것도 몰라야 될 거 아니여?”
‘아는 이것’을 도시 찾을 수 없는데도 ‘아는 이것’은 분명 작동했다. 범위도 무한했다. “눈으로 보는 것만 안다면 이 방안에서 지금 보고 있는 것만 아는가? 저 밖에 뭐가 있다는 걸 안보고도 ‘아는 이것’은…한물건도 없는데 드러나 있고, 무시무종, 시작이 없는데 끝이 있어요?” 법문은 정수리에 더욱더 가까워졌다. “수억만년을 산다 해도 없어진다 그러면 그 순간은 허망한 거여. 사람이고 뭐고 유정물이든 무정물이든 왜 죽느냐? 태어났으니 죽는다. 아는 이것도 무엇이 있어서 안다면 없어지게 돼야 있다. 스스로 자기자신을 점검을 해볼 일이죠. 뭣이 그렇게 알아요? 이것이다 할 것이 없는 것은 확실해요? ” 모두들 한목소리로 답했다. “예.”
종사의 미소는 더 진해졌다. “세상사람들은 아는 주체가 있어서 아는 줄 아는데 그런 거 없어. 아는 이것은 실제로 생긴 적이 없어(고로 없어지지도 않아), 몸은 80년90년 쓰면 갈아치우는 것이고, 생명 그 자체는 생사가 없다 이거여. 분별성과 주착심도 본래 없는 것이여.” 그러므로 경계 대처법은 아주 쉬웠다. “경계야 너 물러가라 할 것도 없어, 다만 끌리지 않으면 돼야. 허공에 돌을 던지면 아무것도 아니죠, 방죽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생기죠, 경계는 경계일 뿐이여. 원망할 것인가 감사할 것인가, 감사를 해버리면 금방 없어져버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공평하지 못할까. 종사의 결론은 “선악업보의 차별은 지은 바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참마음의 실체를 안다는 것은 “릴레이하는데 바통을 받은 것이요 그거 없이 백날 뛰어봐야 소용없다”고 지적한 양제승 종사는 “다생겁래로 쌓인 업 때문에 조금만 방심하면 (본래 없는) 내가 주가 되고 나다 하는 걸 지어가지고 스스로 속박받고 사는 것”이라며 “그래서 지성으로 공부(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내가 달라지면 옆이 바로 달라지니 나를 바꿔 세상을 바꾸는 역군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서원으로 1시간30분에 걸친 특별법문을 마무리했다. SF교당 양상덕 교무의 친부로 2일 북가주에 온 양제승 종사는 오는 14일(일) 오전에는 버클리교당에서 법문을 하고 프레즈노와 오렌지카운티를 순차방문한 뒤 28일 귀국한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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