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거리는 한산했고 하늘엔 별이 없었다. 그러나 희뿌연 도심의 하늘에서 무수한 별빛이 찬란하게 쏟아지게 했던 것은 순전히 FM에서 들려오던 죠수아 벨의 연주 때문이었다. 마치 한 마리의 나비가 된 느낌같았다고나할까? 육체에서 벗어나 마구 하늘 저편으로 날아오르는 느낌… ‘Out of world’의 환각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죠수아 벨이 연주했던 악기가 한 몫 했던 것 같다.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가 존재할 수 있을까… 곡의 아름다움은 이차적인 문제였다.
명품과 짝퉁의 차이는 그 속에 혼이 담겨있다는 점일 것이다. 짝퉁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명품일수록 장인정신, 즉 혼을 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명검은 무사를 빛나게 하고 좋은 악기는 연주자를 빛나게 한다. 명연주 뒤에는 명기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신비한 소리를 낸다는 ‘레드 바이올린’에 얽힌 전설이 수년 전(1999년)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같은 악기에 영감을 얻어 픽션화 된 이 이야기는 특히 바이올린의 명장 죠수아 벨의 탁월한 주제곡 연주로 세인에게 널리 알려졌고, ‘레드 바이올린’을 연주한 벨이 구입한(2001년) 스트라디바리우스 또한 기구한 운명을 지닌 ‘알프레드 깁슨’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명 ‘레드 바이올린’이라는 대명사로 세인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바이올린은 악기 중에서도 유독 센슈얼한 악기로 알려져 있다.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닮았다는… 마치 여인의 몸체처럼 센슈얼한 감흥으로 공명하는 악기… 바이올린은 오래될수록 신비로운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영화 ‘레드 바이올린’에서는 해산하다 죽은 아내의 피로 덧칠을 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미스테리를 담아 더욱 신비감을 주고 있다. 프랑스 지라드가 감독한 이 클래식 이야기는 약 3백여년 전 니콜로 부소티(바이올린 제작자)가 장차 태어날 아기를 위하여 바이올린을 제작하다가 해산 중에 아내가 사망하자 그 피로 악기를 칠해 완성시켰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후 악기는 저주를 받아 악기를 소유한 자는 모두 불행을 당하거나 죽음을 당한다는 이야기로서 특히 주제곡이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으면서 더욱 화제가 됐었다.
악기에 담긴 어떤 혼이라고나할까, 영화 ‘레드 바이올린’ 상영 이후 죠수아 벨은 급격히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더욱 아이러니컬한 것은 벨이 구입한 악기가 일명 ‘알프레드 깁슨’이라고 불리우는, 20세기초 유명했던 바이올리니스트 후버만이 사용했던 악기로서 1936년 카네기 홀에서 분실 된 후 우여 곡절 끝에 죠수아 벨의 손에 들어왔다는 미스테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20세의 바이올리니스트 쥴리언 알트맨이라는 자에 의해 도둑맞은 이 악기는 무려 40여년간을 바 등에서 연주되며 거리의 악기로 전락해 있다가 그가 죽으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우연한 기회에 이 악기를 빌려 연주할 수 있었던 벨은 그 뛰어난 소리에 크게 놀랐으나 감히 소유할 염두를 내지 못하다가 2001년 런던의 어떤 딜러에서 기적적으로 손에 쥐는 행운을 맞이하게 된다. 악기의 음색이 연주인의 이미지를 대변한다고 본다면 벨이야말로 운명적인 행운아가 아닐 수 없었다. 인디애나에서 태어난 벨은 약관 12세 때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신동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0년 영화 ‘레드 바이올린’으로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 2002년에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로 그래미 상을 수상한 바 있다.
벨은 왜 그 악기를 손에 쥘 수 있었을까? 또 그 ‘레드 바이올린’은 왜 벨의 손에 안기게 됐을까? 그 어떤 못다한 사연… 어떤 못다한 전설이 남아 있길래?…
사랑이 그렇고 인생이 그렇듯, 아낌없이 연소되는 음악은 아름답다. 인생은 바람처럼 왔다가 낙엽처럼 사라지는 냉혹함이다. 그러나 정열을 간직한 소멸은 아름답다. 마치 극지의 오로라처럼 번지는 아름다움의 고독… 소멸의 숙명… 삼라만상의 떨림이 마치 한 소절에 담긴 것처럼 절규하는 벨의 ‘레드 바이올린’… 시벨리우스의 그 처연한 바이올린 선율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인생의 불꽃놀이를 진정으로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리라. 오늘도 스치는 바람이 서늘한 안타까움으로 몸부림치게 합니까? 죠수아 벨이 연주하는 시벨리우스를 들어보세요.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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