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즐겨먹던 음식을 꼽으라면 아마도 짜장면, 짬뽕이 아니었을까싶다. 즐겨먹었던 기억과 함께, 주문에 앞서 늘 짬뽕을 먹을까, 짜장면을 먹을까 살짝 고민했던 것도 떠오른다. 고민했건만도, 짜짱면을 시키면 짬뽕이, 짬뽕을 시키면 상대방의 그 윤기나는 짜장면이 더 맛있어보였다. 이러한 영원한 갈등을 해결못하는 분들이 많은걸 눈치챘는지, 근래엔 ‘짬짜’라고 해서 한그릇에 짬뽕과 짜장면을 같이 주는 메뉴가 생겼다. 그럼 이제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메뉴에 만족할까 글쎄다.
내것이 언제나 남보다 부족하게 여겨지는 거, 사람들의 오랜 습성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의 떡이 커보인다’ 옛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내 아들의 장점 보다는 남의 자식의 장점이 더 커보이고, 나는 매일 싸워도 남의 부부는 늘 행복한 것 같다. 남의 옷, 남의 차…어쩐지 남의 것은 더 좋아보인다. 그래서 내게 이미 있는 것도 남이 가진 것은 더 욕심이 난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나고 많이 가진 자만 있는 게 절대 아니다. 그런데도 늘 나 자신은 초라하고 남이 더 빛나보이는 것은, 언제나 내가 내가 갖지 않은 것에만 포커스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짬뽕이 맛있을 거 같은 데에만 포커스를 두고 있어서, 내가 최고로 맛있는 짜장면을 가졌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억울한가. 이처럼 우리는 욕심 때문에, 기껏 가진 행복도 행복인줄 모른다. 아무리 화려해보이는 사람도,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의 그늘이 있다는 사실이 명백함에도, 늘 그 환한 부분만을 보고는 목말라한다.
내 손에 가장 달고 시원한 물을 들고서도 말이다. 포커스를 내가 못가진 것에만 두면, 다 가졌어도, 거지가 가진 밥그릇이 탐이 나서 죽을때까지 불행할 지도 모른다. 그것은 행복하게 사는 법이 아니다. 상대적인 결핍감은 절대로 끝이없다. 다만, 스스로 끝낼 수는 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짬뽕이면 짬뽕을, 짜장면이면 짜장면을 맛있게 먹으면 된다. 세상에는 최고로 좋은 것이란 없다. 내가 보기에 ‘좋아보이는 것’만 있을 뿐이다. 호화 유람선에 앉아서 최고급 샴페인을 마시는 사람의 그 샴페인이 쓴지, 단지, 독이 들었는지는 당사자 아니면 모론다. 단지 내가 부럽게 보면 그것은 최상이다. 무엇을 갖느냐는 인생에서 그닥 중요하지 않다. 죽음 앞에 서면, 뭘 가졌냐가 아니고 어떻게 살았나로 그 인생은 평가된다.
황제의 밥을 먹었냐, 걸인의 밥을 먹었냐가 아니다. 날마다 죽 한그릇만 먹고 살았어도 가치있게 살았으면 그 인생은 행복이다. 그 시간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고,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남이 가진 것 따위로 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지 말자. 남의 것은 좋아보이는 것일뿐, 실제로 좋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원하지 않다. 초기 경전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잠시 거기 머물뿐, 온전히 내것이라 부를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남의 짬뽕에서 눈을 떼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