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을 비교해보자. 이승만은 1895년 영어를 익히겠다는 목적으로 배재학당에 입학하였다. 졸업식 때는 학생 대표로 졸업 연설을 영어로 했다. 탁월한 영어 실력으로 30세에 미국 유학을 시작하여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학사, 하버드에서 석사, 프린스턴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모두 5년반 만에 끝냈다. 집안 배경으로는 조선 초기 왕손 양녕대군의 후손이었다.
노무현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소학교 중학교에서 공부는 잘했으나 수업료를 제대로 못내 결석이 잦았다. 중학 담임선생의 권유로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겨우 졸업한 후 농업협동조합 입사시험에 낙방하자 막노동판을 전전하다가 군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결혼 후 고시에 도전하기로 결심하여 사 수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이 노무현의 모든 학력이다. 58세 되기까지 미국 구경도 못했다.
20세기 초 미국 유학에 박사 학위까지 지닌 이승만은 본인의 대통령직 수행을 운명적인 것이라는 믿었고 타인들의 흠모와 추앙이 이를 부추겼다. 두번째 대통령도 영국 에딘버러 대학 출신의 윤보선, 맨해턴 대학 법학 박사인 장면 초대 내각총리로 이어지면서 건국 첫 15년을 유학파 엘리트들이 나라의 총수 직을 지배했다.
그에 반해 5.18 민주항쟁을 비롯한 민주화 대세에 굴복한 1987년 대통령 단임제, 직선제 선출, 디지털 통신혁명이 고등학교 출신의 서민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정치 드라마를 가능하게 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엘리트 계층의 지배가 당연시 되었던 건국초기에서부터 군사독재를 거쳐 대한민국 민주화 실현의 심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기 인생을 자살로 마감한 것은 우리 민주화의 불 완성과 부조리를 극적으로 노출한 사건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투표함 뿐의 민주화다. 언론은 정치 야합 도구로 전락하였다. 검찰은 안하무인의 수사 버릇과 정치잣대 여론 재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권남용 또한 뿌리 깊다.
진정한 정당 정치 부재도 지적되어야 한다. 한국 정당들은 이해집단의 계보정치에 불과하다. 확고한 이념과 역사가 없다. 정당과 민중에 책임 있는 행동을 하기보다는 계보이익만 추구한다. 계보 정치에서 최고 권력자는 혼자 권력을 누리다가 물러나면 설 자리 없이 외롭다. 모든 매를 혼자 맞아야 한다.
또 하나 지적되어야 할 것은 공정한 재판 문화 결여다. 재판 전에는 무죄로 간주되며 응징 받지 않는 것, 이것은 피고인의 유일한 방패막이며 민주사회의 상징이기도하다.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비극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얼마 전 민주주의 종주국 영국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위로라면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브라운 내각 각료 중 한 여성 장관 의 남편이 비디오 두 개를 빌리면서 이것을 부인의 공용 지출로 처리 했는가하면 어떤 의원은 자기 별장의 유리창 바꾼 것도 공금으로 처리했고 수상 자신도 떳떳하지 못한 지출로 영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미국 역사상 불명예 대통령의 상징처럼 된 닉슨 대통령을 재임 중 사임케 한 워터게이트 사건도 30 여년이 지난 오늘에는 다른 해석이 있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이 사건을 보스턴 뉴욕 중심의 동부 세력과 서부 출신의 닉슨을 에워싼 서부 세력 간의 정치 쟁투의 결과로 풀이한다.
민주화는 과정이다. 완성품이 없다. 아니 있을 수 없다. 민주화는 인간의 원죄와 불완전한 속성에 도전하면서 보다 나은 통치를 꾀하는 생활 방식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이면의 도덕이나 윤리성에 우리를 투영하는 성찰의 생활이기도하다.
차만재 / 칼스테이트 프레스노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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