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와서 물었다. ‘스님,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 말씀 한마디만 듣고도 깨달은 사람이 많다는데 요즘엔 왜 없습니까.’ 없는지 지가 아나, 내가 아나, 왜 ‘없다’ 라고 단정을 짓는가.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실상은 ‘께달은 사람’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것일 거다. 도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면 옆에 서 있은들 알겠는가. 깨친 이란 하늘을 펄펄 나르고 뭔가 신비한 걸로 착각하는 이가 많은 것 같다. 물론 육신통이라고 해서 도튼 스님들은 앉아서 남의 전생사나 천리를 볼수 있다고 하고, 그 산증거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것을 깨달았다고 하지 않으셨다. ‘마음에 탐진치 삼독이 제거된 상태’라고 하셨다. 탐,진,치 삼독이 제거된 상태란 평온하고 조용한, ‘밝음’ 그 자체이다. 그리하여 마음이 행복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어, 마음에 단 한 점의 티끌도 없이 깨어있다면, 그는 깨친 사람이다. 종교라는 것은 삶의 여러 길 중에서 하나의 선택이다. 왜 선택했냐에는 나름 까닭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면 그뿐이다. 근데 행복은 뒷전이고 시비로 늘 불행한 사람들이 더 많다. 시비해서 어쩌자는 건가. 그런 의심과 알음알이로 가득찬 마음이라면, 성현의 말씀 아니라 할아버지 말씀이라도 들어갈 틈이 있겠는가.
그렇게 물든 마음으로는 당연히 깨달음이 있을 수 없다. 부처님 당시의 불자들은 부처님 말씀 한마디를 생명수처럼 여겼다. 또한, 보살행에 지극정성이었다. 그런 상태에서는 당연히 깨침도 빠르다. 현대인은 지워야 할 업이 너무나 지중하고 크다.
아는 것도 많아, 비워야할 것도 태산이라는 말이다. 한두 해 가지고 되겠는가. 일년이나 참선 공부를 하였는데도 깨달아지지않는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 중은 그런 말을 들으면 할 말을 잃는다. 전생부터 보살행을 닦고 원을 세워서 사바세계에 오신 부처님께서도, 장장 6년이라는 세월을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면서, 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렇게 공부하여 얻는 것을, 무슨 까닭으로 본인은 일년 공부하여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부처님보다 치열하게 공부했는가, 근기가 수승한가, 보살행을 더 많이 하였는가. 일년을 목숨바쳐 했으면 혹시 모른다.
공부도 잘 안나오면서 그런다. 과연 불가사의다. 배우려 묻는 것은 그래도 좋다, 어떤 이는 부처님 법을 다 알아서 절에 가서 배울 거 없다 하면서, 불제자의 행은 하나도 없이, 스스로 불자라 칭하며 다닌다. 이 중은 이런 일을 겪을때마다, 성현의 아름다운 말씀조차 들어갈 자리도 없는, 그들의 아만이 불쌍하여 가슴이 저릴 뿐이다. 초기 경전에 나오는 글이다. 읽고 느끼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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