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항복하소
어떤법에도 허물이 따른다. 청천하늘과 맑은 바람에도 원망하는 자가 있게 마련이고 대지를 적시는 빗줄기에도 짜증내는 사람이 많다. 허물스럽기는 절대세계를 주장하는 종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저렇게 허물을 보는 눈은 성내는 마음 때문이다. ‘어떤것의 허물이라도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보현보살의 고백이다(화엄경). “내눈속의 대들보는 보지못하면서 다른 사람눈의 티끌을 본다”고 저 나사렛의 성자께서도 엄하게 꾸짖어셨다. 성내는 마음은 곧 바로 눈빛으로 온다. 힘이 가득 들어간 눈에 표독 스러운 독기를 품고 있다. 다음으로는 입으로 와서 욕설이 난무하여 난리 부루스를 추게 된다.
욕설의 대부분은 비난이다. 잘못한다 웃긴다. 병신스럽다. 더럽다 등등의 비난이다.
더욱이 나이 든 사람들의 욕설은 더 추하고 더럽다. 늙어 빠질때까지도 부끄러움을 몰랐단 말인가. 수치지심은 예의를 생(生)한다고 한다. 예로부터 동양인들의 가장 핵심적인 도덕 윤리의 근간이다.
서양사회에서는 시비지심을 숭상함이 강하여 정의로움이 넘치는 세상을 목표로 했다. 기독교의 성경에서도 정의로움에 대한 언설이 많음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측은지심(仁)과 자비와 사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필수적이며 우선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하여튼간에 같은 동물이지만 짐승과 사람이 다른것은 이 수치지심이라고 하니 짐승적인 삶으로 욕설하고 울부짖고 으러렁 거려서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특히 불교에서는 속살림과 겉 살림을 나누어서 속살림은 자기의 인격을 말하고 겉 살림은 자기의 소유를 말하는데 성내는 모습은 자기의 속살림을 여지 없이 들어내는 것이라 하여 엄중히 살림살이 단속을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냄새나는 입을 열자 말자 집안의 흉악한 모습이 여지 없이 들어난것이 성내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더 내어 놓을 카드가 없게 되어 막장인생에 기사회생은 어렵게 되고 피로는 겹겹으로 샇여감이 적지 않음을 겪게 될것이다. 이 쌓이고 쌓인 피로감은 범죄적인 신체적 폭력을 촉발하게 되어 화산이 터지고 지진이 일어나고 해일이 넘치는 재앙이 되고 마는 것이 두려운 일이다. 산기슭에 자라는 저 산뽕나무가 바닷물이 밀어 닥쳐 잠기는 엄청난 세월이 흘러도 (상전벽해) 욕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한다.
욕설은 질투심의 표출이다. 욕설이 잦은 사람은 감출 수 없는 질투심으로 가득한 마음을 가진다. 나이외에 다른 사람이라는 존재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질투심이다. 욕심과 질투심이 합해지면 ‘욕질’이 되는 것인데 욕질한다,욕찌꺼리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우리가 흔히 무심이라고 할때의 무심한 상태는 질투심이 많지 않을때의 마음 상태다. 무심하다고 어두운 마음 (치심)이 벗겨지는 것도 아니고 욕심(탐심)이 줄어 드는것도 아니다. 질투심이 줄어들어 성낼일이 많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욕심과 질투심으로 뭉쳐진’나’라는 주장은 참 힘겨운 싸음이다.
애들 그리 힘겨운 싸움을 즐겨하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생각해 봐라. 나는 나에게만 나이지 나이외 이외의 모든 존재들에게 남이다. 일대 몇의 싸움인가. 승산이 있는 싸움인가. 피곤한 인생은 승산에대한 계산착오로부터 시작 된것이다. 편을 만들어 숫자를 늘리고 편 싸음으로 해봐도 승산은 없다. 오직 한가지 승리하는 방법은 절대 소수인 나를 세우지 않는 길 뿐이다.(無我). 당신 당신 당신 만이 존재이고 나는 나는 나는 존재가 아니다.(無我). 이때야말로 존재와 비존재가 하나되는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다.
욕질인생으로 뻗대지 말고 그만 항복하소. 이것이 저 금강경의 제일 첫머리에서 물어본 ‘항복기심’이다. 나는 존재가 아니지만은 당신은 존재라는 것 !. 흔히들 남만쿰은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비천해지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를 세우지 않았을때의 나 만쿰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무위행(無爲行)라고 말하고 해탈한 삶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나를 세우지 않앗을때도 있는 나를 흔히 개념화하여 ‘청정자심’이라고 하는 것인데 불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불덩어리이다. 봄이 되면 새싻이 움트느라 바쁜 모습이다. 地가 火風에 空(無我)이 합해진 오행의 기운이 돌아가는 것이다. 기운찬 봄이다. 자연은 패종(敗種:실패한 종자)이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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