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과학은 지구는 네모라고 말했다. 좀 지나자 둥글다,라고 바꿨다. 과학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최소 물질은 원자라고 했다. 요즘엔 다시 쿼크라고 한다. 과학은 늘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 아니다. 이 순간에도 과학은 수시로 ‘틀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학을 무엇보다 신뢰한다. 역사는 어떤가. 역사는 위대한 혁명이라 했던 것을 몇 년 지나지 않아 몹쓸 쿠테타였다고 기록한다. 그래도 우리는 역사를 믿는다. 왜일까. 그렇게 학습되어졌기 때문이다. 의심하기에는 너무 그럴 듯 하기 때문이고, 사실은 진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은 줄 알면서도,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고 다 믿고 산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은 다 진실이 아니다.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이 다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이 지구상에 히말라야가 있다고 믿고 있다. 물론 히말라야는 이 지구상에 진짜로 있다. 있지만 모두가 ‘이거다’라고 똑같이 말하는 히말라야는 오직 이름뿐이다. 지금 당장 옆사람과 히말라야에 대해서 말해보라. 내가 알고 있는 히말라야와 그사람의 히말라야가 같은지. 사람들은 각자의 세상 말고는 이 세상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이런 식으로 ‘이 세상’은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이 세상에는 돈이 귀중하다는 가치관이 있다. 만약 아이들도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면, 아이는 돈하고 사탕을 주면 사탕을 선택하지 않고, 돈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안 그런다. 당신은 말하리라. ‘아이들은 아직 세상을 모른다’고. 도대체 ‘어떤’ 세상을 모른다는 건가. 어른 세상? 미국? 세상을 모르기는 너나 내나 마찬가지다. 아직도 오지에 사는 사람들은 인터넷이 뭔지 모른다. 우리는 당연히 북극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른다. 이것이 단지 미개의 문제이고 아.직.모.르.는. 문제일까. 전혀 다른 세상에 살면서도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적인 빈곤감과 세상과 사람에 대한 증오 때문에 괴롭다. 그렇지만 내 눈에 보이는 그 세상은 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법이 바로 이것이다. 이 세상은 연기법으로 존재할 뿐, 어디에도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각자가 만들어낸 세상이 있을 뿐이다. 내가 열면 여는대로 세상은 열리고, 내가 줄이면 줄이는대로 세상은 작아진다. 그리하여, 내 세상을 아름답게도, 괴롭게도 만드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세상은 죄 없다. ‘존재하지 않으므로 죄가 있을 자리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 여.기. 이 세상에 살.고. 있다라고 믿는다. 죽어도 나는 지구인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꾸 변하는 지리와 과학은 믿어도, 영원한 진리인 부처님의 가르침은 안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무지개를 쫓아가느라 힘들고 고달프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無明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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