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가졌는가
그 사람을 가졌는가 라는 시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시다. 기약 없는 먼 길 떠날 때 처자식을 맡기며 맘 놓을 사람, 구명대 하나를 놓고 서로 네가 살아야지 하며 사양하는 사람, 온 세상의 찬성보다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하는 그 사람...
구구절절 믿음을 바탕으로 한 진실 된 관계를 말할 때 나는 늘 맘이 불편했다. 내게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거니와 나 또한 누구에게도 그런 이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뿐 아니라 인간들 중에 정말 그런 관계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이들이 있기는 할까 늘 반문이 되었다. 치사스럽달 정도로 알량한 계산속에서 발발 떨며 하루하루를 사는 이 무력한 인간의 행로에서 그 시를 스칠 때마다 누구에게도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어 보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하며 슬퍼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의 어느 누구와도 그런 믿음의 관계가 되기 어렵지만 어쩌면 결혼한 자들의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코앞의 앞날을 모르는 상황에서의 이별이라도 남편과 아내는 믿음 속에서 미래를 약속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처자식을 이북에 남겨두고 홀로 남하한 많은 남정네들이 그리 하였을 것이고 또 행여 같이 나오는 길에서라도 하나밖에 없는 구명대를 앞에 두고 다툴 때라도 아마 나보다는 당신이 애들에게 더 필요한 사람일 것이라며 서로 양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사순절 특강이 있었다. 특강을 해 주신 신부님은 지난 연말의 판공성사를 줄때 많은 신자들이 경제의 괴로움을 이야기해서 신부님의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그래서 하느님께 많은 이들이 힘들어 한다고 말씀드렸을 때 하느님의 답은 ‘실직을 했다고 해서 불행 한 것은 아니다.’는 답을 해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신부님은 우리가 돈이 없어도 누릴 수 있는 많은 은총에 대해 말씀 해주셨다. 가족 간의 믿음과 사랑, 귀 기울여 상대의 요구를 들어 주는 것. 몸이 건강한 것, 돈이 들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햇살, 공기, 등등...
그 강론을 들으며 나는 립서비스와 진정한 도움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힘들 때, 신앙심이 깊으신 교우들이 기도 해 주겠다는 제의를 해 주는데 그 때마다 나는 이것이 립서비스인가, 진실된 도움의 손길인가 헤아리는 게 늘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직장을 잃고 사는 게 힘들어 질 때 해줄 수 있는 일이 너무도 제한되어 있음이 슬프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마도 그를 안아줄 수 있을 것이고, 뜰에 핀 꽃을 꺾어 줄 수 있을 것이고, 점심을 사줄 수 있을 것이고 만약 필요하다면 쌀 한부대나 김치 한 병을, 혹은 내 것을 사면서 하나 더, 하고 티셔츠를 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 사회가 한국처럼 남의 보증을 요구하는 사회라면 내가 기꺼이 친구라 부르는 그 누구를 위해 기꺼이 보증을 서 줄 수 있을지 나는 정말 자신이 없다. 내가 말하는 우정, 사랑, care, 이런 것은 이토록 하잘 것 없고 힘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친구야,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 정도뿐이야.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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