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반세기 이전의 이야기이다. 6.25동란이 휴전으로 막을 내리고 사회적, 문화적으로 급변하던 1950년대 중반 한국은 ‘박인수 사건’으로 떠들썩하였다.
26세의 박인수씨가 해군대위를 사칭하며 훤칠한 생김새와 능란한 춤 솜씨로 1년 사이에 여대생과 상류가정의 미혼여성 70여명을 농락하다가 혼인빙자 간음죄로 기소된 것이다. 그 사건의 재판을 담당했던 권순영 판사는 “스스로 보호하지 않는 정조는 법이 보호할 수 없다”라는 유명한 판결문을 남겼다. 자기 몸은 자신이 잘 지키라는 뜻일 것이다.
권 판사님은 필자의 고등학교에 시간강사로 출강하셨고 그 후 대학에서는 민법을 가르치셨던 분인데 수업보다 재판에 관심이 많았던 우리들이 법정 비화를 요구할 때마다 슬쩍 맛보기만 들려주시고 본론은 재치 있는 답변으로 피해 가셨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는 정조란 말이 남녀 공유의 용어가 되어버렸으니 한국의 성문화도 많이 변한 셈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탤런트 장자연의 자살이 호사가의 입방아에 올라있다. 죽음까지 몰아간 정확한 이유는 좀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그녀는 그동안 연예계 생활을 위해 원치 않던 접대와 성상납을 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연예계에서 이런 따위의 행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늘 일어나고 있는 공개된 비밀이다. 그런 생활이 얼마나 자존심을 훼손시키고 힘들게 하였을까 충분히 짐작은 가지만 결국은 성인인 그녀가 스스로 결정해서 한 일인 만큼 누구를 원망할 수없는 자신만의 책임이다.
문제는 이런 개인적인 일까지 수사하는 한국경찰의 공권력 남용이다. 사람이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크든 작든 개인을 희생시켜야 하는데 어느 정도까지인가는 순전히 당사자가 알아서 선택할 일이다. 이에 대한 정답은 이미 50년 전 박인수 사건의 판결문에 나와 있는 것이다. 연예인의 생활은 외견상 화려하고 행복한 듯 보이지만 그 속에 들어가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1년간 자살한 여러 연예인이 좋은 예이다. 최근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김연아 양도 피겨스케이트를 시작한 후 한시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고 수천 번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속으로는 괴로웠으나 겉으로는 웃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근래 한국의 TV드라마를 보면 연기력은 괄목할 진보를 보인 반면 플롯은 모두 동일하거나 유사한데다 비현실적이고 패륜적인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어 국민들의 가치관을 호도해서 정신적으로 황폐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 방송국마다 시청률 경쟁이 치열하다고는 하지만 시청자들은 드라마와 현실을 착각하여 이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모방하려는 성향이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판단력이 약한 청소년들은 무작정 주인공을 동경하거나 아예 연예인이 되려고 본분인 학교 공부를 제쳐두어서 많은 가정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 유독 성형수술이 많고 분수에 맞지 않게 명품을 선호하는 것도 이런 부작용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좋은 TV 드라마는 각박한 일상생활에 재미와 활력을 넣어주는 매우 유익한 문화예술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든 나쁜 TV 드라마 때문에 가정과 사회는 소리 없이 병들어 가고 있다.
조만연/수필가,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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