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마틴 루터 킹 목사다. 1968년 8월 23일 워싱턴 광장에 모여든 수많은 인파를 향해 불을 토하던 그의 연설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는 감동적이다. 연설 하반부는 이렇게 진행된다. “그러나 여전히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에 이르러 이전 노예의 자녀들과 이전 주인의 자녀들이 조지아의 붉은 언덕으로 나아와 형제애의 식탁에 가지런히 앉을 수 있는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는 미시시피 주까지도 박해의 열기로 찜통 같던 상태에서 자유와 공의의 오아시스로 바뀔 것이라는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네 아이들이 언젠가는 피부색깔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으로 평가받을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는 모든 골짜기들이 메워지고 모든 언덕들이 돋우어지며 모든 산들이 낮아지고 거친 곳들이 평야가 되고 구부러진 곳들이 곧게 펴지고 주의 영광이 드러나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바라볼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시대의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늙은이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욜 2:28)이라 외쳤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내게 과연 꿈이 있는가? 색 바랜 꿈일망정 어릴 적부터 고이 간직해온 그 꿈이 아직도 남아 있는건가? 꿈을 빼앗긴 것일까? 아니면 내 스스로 버린 것일까? 잃어버린 나의 꿈을 찾으련다. 홍수로 매몰된 폐허더미에서 꿈의 잔해를 발굴해내련다. 지하동굴의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는 옛 꿈을 구해 내련다. 가슴 어디엔가 박혀 있을 내 어린 꿈의 파편조각을 찾아내련다. 과거에 매인 꿈이 아니라 미래를 끌어당기는 꿈을 매만지고 싶다. 우리의 꿈이 잊혀진 꿈이 되지 않기 위해 더 늦기 전에 잃어버린 꿈을 찾아 추억여행이라도 떠나고 싶다.
꿈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꿈은 너와 나의 미래를 위한 호흡과 같다. 헬런 켈러는 “맹인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시력은 있되 비전이 없는 것”이라 답했다. 우리에게 꿈다운 꿈, 비전이 없다면 우리는 맹인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다. 뒤늦게 꿈다운 꿈을 그리고 싶다면 이제라도 성실함으로 너와 나를 위한 우리의 꿈을 스케치해야 한다. 색깔을 덧입히기 전에 뚜렷한 형체를 갖게 해야 한다. 정과 끌과 망치를 들고 쓸모없는 돌조각을 깨고 부수고 다듬어 꿈을 형상화시켜야 한다.
요셉은 꿈장이였다. 꿈을 꾸고 꿈을 해석하고 꿈을 자랑하며 꿈을 추적해간 꿈의 사람이었다. 그 꿈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고, 잊은바 되고 나락에 떨어졌지만, 결국 그 꿈으로 인해 인생의 대역전극을 펼칠 수 있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꿈장이의 비전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꿈을 갈고 닦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 한다. 주변을 살펴보라!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랄 꿈나무들이 보이지 않는가? 세계의 현안들을 끌어안고 고민할 만한 그릇들이 다가오지 않는가? 오늘 우리의 할 일은 그들을 붙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세우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깃발을 흔들며 나팔을 불고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후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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