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름다운 경기였다. 물론 졌지만 경기가 끝나고 입속으로 맴돌던 말은 ‘beautiful’ 그 한마디였다.
70년대 후반 처음 미국에 이민을 왔을 당시 중학생이었던 기자는 주변의 일부 소수 한인 학생들이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주류사회 친구들에게 밝히고 다녔던 것이 생각난다. 왜 그들은 자신에게 일본 사람이라는 가면을 씌웠을까? 지금도 그 수수께끼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물론 당시 한국이란 나라는 내세울 것은 많이 없었다. 대부분의 미국인 친구들은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으며 당시 그들에게 한국은 아직도 미국의 원조(?)를 받는 ‘후진국’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스포츠 경기에서는 더욱 그랬다. 전지훈련 차 한국 축구대표팀이 미국에 오면 미국이나 멕시코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펼쳐 겨우 한번 비기면 2~3번 지고 가는 것이 패턴이었다. 한인 복서도 세계 타이틀 매치를 LA에서 열면 어김없이 무릎을 꿇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80년대 들어와서 84년 LA 올림픽 때 한국의 양궁이 금메달을 따내던 장면을 보면서 처음으로 열광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박찬호를 포함해 여러 명의 한인 메이저리거들이 탄생했으며 매 주말마다 PGA와 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한인 선수의 모습이 TV에 비춰진다. 특히 지난 2006년에 이어 이번에도 남가주 한인들을 환호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간 한국 야구대표팀의 활약은 이곳 교포들은 물론 1.5세와 2세들에게도 큰 감동을 선사했다.
23일 경기가 끝나고 여러 포털사이트에 오른 한인들의 댓글은 보면서 이번 대회가 얼마나 많은 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경기를 지켜봤다”는 40대 주부에서부터 영어로 “나는 한인인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는 한인 2세까지 대부분의 댓글은 경기에 져서 실망했다는 표현보다는 끝까지 노력하는 한국 선수들의 모습이 마음에 깊은 감동을 남겼다는 표현이 훨씬 많았다.
샌디에고까지 가서 한국팀을 응원했던 초등학교 3학년의 우리 아이는 연장 혈전 후 끝내 한국팀이 석패하자 “슬프지 않냐”(Aren’t you sad)는 질문에 “아니에요, 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No, they never give up)라면서 오히려 가슴을 넓게 폈다.
그렇다. 게임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한번 쓰러졌을 때 얼마나 빨리 벌떡 일어나 다음 대결을 준비하느냐는 것이다. 비록 이번 경기에서는 졌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충분히 만회할 기회가 있다. 바로 이번 토요일 김연아 선수가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일본 선수에 맞서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타이틀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백두현 특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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