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생동하는 봄. 봄의 전령이 겨우내 드리웠던 음산한 그림자를 걷어 들이고 매화 가지엔 화사한 봄 꽃이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새들도 분주히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는 아침… 꽃 향기를 맡으며 아침 산보에 나서본다. 공원의 호수…. 오리들도 평화롭게 노니며 봄의 정경을 그리고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니 갑자기 마음이 활짝 열리며 풍성한 연꽃처럼 삶에 대한 찬양이 크게 개화한다. 눈부시게 푸르른 날… 한 편의 시, 한 편의 교향악이 듣고 싶은 이 계절에… 누군가에게 정다운 한편의 편지가 쓰고 싶은 계절의 정점이다.
‘절대로 만나지 않도록 할 것이며, 설령 마주치더라도 대화하지 말 것…’
진한 가슴앓이가 전해져 오는 폰 메크 부인과 차이코프스키의 플라토닉한 사랑을 연상하며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을 스테레오에 걸어본다. 마치 무서리 내리는 새벽을 뚫고… 저 멀리 심포니의 향연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절망을 부수는 새벽의 속삭임일까? 아니면 봄의 속삭임일까? 왜 이 신비한 소리는 이처럼 영혼을 저미며 흔들고 격양시키는 것일까?
‘비창 교향곡’으로 유명한 차이코프스키는 음악가이자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작곡가 중 하나였다. 특히 폰 메크 부인과의 정신적인 사랑이 1천여통의 편지를 통해 고스란히 후대에 전해지고 있는데, 남녀의 차원을 넘어 음악으로 승화된 그들의 사랑은 평생 단 한번의 만남도 없이 오로지 편지 속에서만 이루어졌던 지순한 것이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모두 6편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특히 폰 메크와의 교류가 시작된 후반부의 작품들(4,5,6번)이 유명하다. 멜랑콜릭했던 차이코프스키는 어쩐 일인지 교향곡 4번에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과 견줄만한 장엄하고도 화려한 기상의 작품을 작곡,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는데 매우 멋을 부린 듯한 이 작품은 현란한 색채로 인해 차이코프스키판 ‘봄의 교향악’으로 부를 만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휴양지였던 이태리 북서부해안에서 작곡되었는데 당시 결혼 실패로 절망하던 차이코프스키는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있을 때에는 주위를 돌아보아야 한다. 축제일의 아이들… 그들의 행복한 모습 속에서 운명은 또다시 그 존재를 상기 시킨다’고 표제에 적고 있다.
4악장으로 된 이 작품은 ‘이태리 기상곡’과 더불어 차이코프스키의 작품 중 가장 밝은 곡 중 하나이다. 특히 4악장은 그 현란함과 장쾌함에 있어 교향곡사에서도 가장 압권이라 하겠다.
이 작품은 폰 메크 부인에게 헌정되었는데, 나네즈다 폰 메크(1830~1894)는 1876년부터 차이코프스키에게 매년 6000루블이라는 연금을 제공, 차이코프스키로하여금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차이코프스키가 폰 메크 부인을 알게 된 때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극도의 절망에 휩싸였던 시기였자, 안토니아 이바노브나 미류코바라는 음악원 여학생과의 결혼이 파탄으로 끝나면서 모스크바(강)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때였다.
‘나는 당신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오직 음악 안에서만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 안에서 감정을 함께 합니다’
차이코프스키와 1천여통의 편지를 남긴 폰 메크 부인은 11명의 자녀를 둔, 46세의 미망인이자 러시아 광산 재벌의 부인이었다. 그녀의 차이코프스키를 아끼는 마음은 교향곡 4번을 시작으로 5번과 6번 그리고 수많은 발레 작품들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는데 차이코프스키는 그녀에 대한 감사의 차원에서 교향곡 4번을 ‘우리들의 교향곡’이라고 불렀으며, 여지껏 작곡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마치 새벽을 깨우는 여명의 소리같다고나할까, 절망을 부수는 듯한 신비한 향연과 들뜬 설렘이 가득한 이 작품은 청량음료처럼 영혼을 크게 감동시킨다. 아마도 폰 메크 부인에 대한 감사, 정열이 녹아져 있기 때문이겠지만 진한 멜랑콜릭 속에서도 타오르는 정열… 고뇌의 속에서도 치열한 투지와 희망이 마치 인간은 폭풍우 속에서 더 높이 날 수 있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한 소절도 진실히 느끼지 않은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 이 교향곡은 조건 없는 사랑… 승화된 희망이 마치 한 편의 편지… 대지의 교향악처럼 울려 퍼지는… 봄의 소리와 함께 듣기에 알맞는 곡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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