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워낭소리’라는 독립영화가 한국 극장가에서 성황리에 상영되고 있다고 한다. 노인과 늙은 소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타리 형식으로 뛰어난 작품성이 크게 평가 받고 있다. 작품성과 대중성이 꼭 반비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음악에서 오페라 형식은 대중성을 겸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영화와 많이 닮았다. 좋은 영화 음악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처럼 좋은 오페라 음악(아리아)도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영화와 오페라의 다른 점은, 영화는 스크린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상영이 가능하지만 오페라는 무대가 있다고 해서 어느 곳에서나 공연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선 훈련된 성악가들이 동원되어야 하고 여기에 수십 여명의 오케스트라 단원, 지휘자, 무대와 의상, 조명 등 오페라 공연을 위한 조건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접할 기회도 적어서 대중의 거부 반응도 그만큼 심한 편이라 할 수 있다.
1982년에 제작된 영화 중에 ‘피츠카랄도’(Fitzcarraldo)라는 모험 영화가 있었다. 독일 감독(베르너 헤어조그)이 제작한 작품인데 주인공(피츠카랄도)이 아마존 정글에서 오페라 하우스를 세운다는 모험을 그린 영화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워낭소리’와 같은 일종의 독립영화의 성격을 띤 작품으로, 작품 자체 보다는 제작자들의 치열한 열정, 예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 받고 있는 작품이다. 아마존 숲 속에 멋진 오페라를 세워 보겠다는 생각이 황당하면서도 이상의 아름다움이라고나할까,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서 느낀 소감은 오페라에 대한 모든 것이 이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오페라가 존재하지만 우리가 자주 접할 수 있는 작품은 겨우 1백여 작품에도 못 미친다. 대부분의 작품은 초연 이후 한번 더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는 (작곡가)평생가야 한번 있을까 말까이다. 오페라는 그만큼 성공하기 어려운 장르의 하나이다.
아마존 정글… 그 대자연 위에 오페라 하우스를 세우고 음악의 향연이 울려 퍼지게 하겠다… 참 멋진 생각이지만 그만큼 또 황당하고 높은 이상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떤 좁은 문이라고나할까… 황당고도 험한 길을 가려고 하다면 그것은 그 속에 분명히 무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피츠카랄도가 그리던 지상낙원… 아마존의 향연은 이 땅 위에서는 존재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염원이 꿈이 되고 음악이 되어 정글에 울려 퍼질 때… 강한 힘이 느껴져 왔던 것은 아마도 인간에게 꿈이란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피츠카랄도’에서 마지막 선상음악으로 펼쳐지는 음악이 바로 이태리의 벨칸도 음악이었다. 벨칸토의 3대 거두 도니제티의 오페라 ‘루치아’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 때 그 장엄한 장면이 연상되곤 하는데 내용의 진한 비극이 남미의 후덥지근한 열기와 어우러져 한편의 광란의 아리아… 진한 드라마를 연출 하곤 한다.
소프라노(루치아)가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아마 벨칸토(시대)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의 하나일 것이다. 도니제티(1797-1843)는 이 작품 하나로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음은 물론 나폴리 음악학교 부교장으로 추대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누구나 한번 보게 되면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드라마틱한 박력과 음악적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낭만과 서정, 리듬의 고저, 아름다운 아리아… 오페라를 대표한다고 할만큼 오페라의 모든 것이 집대성되어 있는 ‘루치아’의 아름다움은 19세기 초 이태리에서 성행하던 오페라 창법(벨칸토)에서 기인했다. 벨칸토 창법은 특히 로시니와 도니제티에 이르러 발군의 활약을 펼치게 되는 데 도니제티의 경우 맑고 아름다운 선율, 극적이고도 풍부한 감성의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사랑의 묘약’, ‘라 파보리타’, ‘루치아’ 등 도니제티의 대표작 중에서 ‘루치아’야 말로 가장 무게 있는 작품이었다. 17세기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에쉬 톤 가의 영주 엔리코, 여동생 루치아 그리고 루치아를 시랑하는 에드가르도의 비극을 그리고 있는 데, 영주 엔리코는 루치아를 박클로우 경에게 결혼 시키려 하고 박클로우의 적수 에드가르도를 사랑하고 있던 루치아는 결국 죽음으로 내세의 사랑을 기약하게 된다. 루치아역의 소프라노 아리아 뿐 아니라 에드가르도가 부르는 테너 아리아들 또한 도니제티 아니면 감히 줄 수 없는, 낭만과 극적인 감동이 가득하다.
인간은 이상의 존재…. 꿈이 있기에 모험을 하고 또 모험이 있기에 존재를 인식해 나간다. 음악도 역시 이상일 뿐이다. 어쩌면 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인간이란 한편의 아리아로 구원을 그리워 할 수 있는 이상의 존재이다. 천국의 종소리처럼 아늑하고… 무한히 울리는 낙원 저 멀리의 소리… 도니제티의 ‘루치아’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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