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음악(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누구나 서구를 동경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음악은 동양적인 요소가 다분하고, 음악의 명상적인 요소는 동양철학(불교 등)과도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음악을 좋아했던 철학자 쇼펜하우워, 니체 등은 동양철학에도 정통한 자 들이었다.
음악이라는 바람은 과연 어디서 불어오기 시작했을까? 논리적이고 이성을 추구하는 서구일까, 아니면 신비로운 명상의 종교를 발전시켜온… 감성의 동양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과거 동양철학에 정통했던 한 음악 평론가는 베토벤의 우람한 외모를 거론하며 몽고의 후손일지 모른다는 가설을 내놓은 바 있었는데, 아무튼 서구는 늘 동양을 동경해 왔으며 음악과 같은 예술을 통해 영적인 동양화라고나 할까, 동양의 어떤 신비적인 요소를 지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작 동양권(중국, 한국, 동남아 등)에서 음악을 크게 발전시켜오지 못했다는 것은 음악 애호가로서 큰 아쉬움으로 남곤 한다. 물론 동양에 악기가 없었다거나 음악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고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바하 등과 같은 위대한 음악가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이 뼈아프다는 말이다.
동서 음악의 비교라고나 할까 우월성 논란은 차치하고, 바하를 논하자면 서구음악은 바하 이전과 바하 이후로 구분 될 만큼, 서구음악의 아버지는 바하였다. 바하 이전에도 수많은 음악가들이 있었고, 바하 당시만해도 비발디(이태리)와 같은 뛰어난 천재들이 활약하고 있었는데 왜 바하일까? 서구 음악사는 단연코 바하를 서구음악의 진정한 출발로 규정하고 있다. 왜 일까? 이는 객관적으로, 문화와 음악의 주도권이 카톨릭에서 신교로 이동해 갔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보다 큰 관점에서 문화의 중심이 점차 독일 등 서쪽으로, 그리고 종교에서 민중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모든 문화와 예술, 과학의 발전이 서쪽(독일을 중심으로)으로 급격히 기울어감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종교(카톨릭)의 권위주의에서 탈피한, 민중의 힘이 그만큼 강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적으로, 바하의 위대성은 무엇보다도 음을 통한 종교의 서민화… 그리고 음악을 통한 언어의 재 창출이라 할 것이다. 그 때만해도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음악, 혹은 교회의 권위를 대변해 주는 예배 음악에 그치던 것이 서민의 마음에 와 닿는 음악, 시로 변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 바하가 남긴 위대한 업적이라 할 것이다. 바하의 소박한 음악을 한 번 들어보자. 그가 남긴 간결 소박한 소품(기악곡)들이야말로 인류가 남긴 가장 고귀한 유산, 서구음악(클래식)의 진정한 출발이었다.
바하는 음악은 신이 주신 최대의 선물이라고 했다. 바하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온갖 믿음의 요란벅적, 교리의 난무에서 벗어나 참 산다는 것의 소박함… 감사가 절로 나게 한다. 그리고 산다는 것의 온갖 해탈의 현란한 해법에서 벗어나 믿음의 순박함… 그 구원을 향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삶은 아픔이 있기에 종교가 파생했고, 영원에 대한 구도를 추구해 왔다. 종교는 마음의 평화를 안겨주고 음악은 평화를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꾸어 준다. 바하의 음악을 들어보자. 그러면 당신은 인생이란 그저 방랑이요, 나그네일 뿐이라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인생은 방랑, 영원한 아름다움도 절대적인 이상도 없다. 어제의 얼굴은 오늘이 아니고, 어제의 사람도 오늘은 아니 있다. 오직 낯선 그림자만 남길 뿐,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삶도, 영원한 죽음도… 오직 오고 가는 법칙, 방랑만 있을 뿐이다.
불교에서는 다시 태어나는 것(환생)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일까, 인생이란 방랑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현실이 괴로워서기도 하겠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귀소 본능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노스텔지어… 방랑과 귀소 본능이 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온 것 같은 막연한 그리움… 향수로 가슴 아파한다. 인간이 그리워하는 곳은 극락도, 천국도, 아름다운 비경도 아니다. 그저 자기가 자라고 태어난 곳… 흙 담장 무너져 가는 초가지붕… 매케한 담배냄새가 코를 찌르더라도 초저녁 호롱불 그윽한 그 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의 3B로 불리우는 바하야 말로 서구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의 하나이자 가장 순박한, 어쩌면 인류의 고향… 가장 동양적인 작품을 남긴, 인류가 낳은 음악의 아버지이기도 하였다. 인생은 방랑… 돌고 도는 공수래 공수거… 가난하고도 순박한, 세고비아가 키는 방랑의 기타… 바하의 소품 파르티타 2번(샤콘느)을 들으며 인생과 방랑을 사색해 보았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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