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다 보면 고유명사, 즉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사육제’, ‘몰다우 강’ 등과 같은 표제 음악에 대해서 거부반응이 일 때가 있다. 보편적인 음악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 대한 작곡가의 주관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몰다우’라는 관현악 교향시만 해도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선율이 그런대로 들을 만 하지만 자꾸 상상력을 ‘몰다우 강’이라는 어떤 특정지역을 연상하는 쪽으로만 몰아가는 것 같아 처음에는 큰 공감을 주지 못하곤 한다. 차라리 ‘운명’이라든가 ‘열정’, 혹은 ‘주피터’ 따위의 표제가 붙은 음악은 듣는 이의 주관을 많이 허용하기 때문에 보다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곤 한다. 우리가 흔히 우리나라의 애국가 연주에 대해서는 감동하면서도 다른 나라의 국가에 대해서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곡가들이 어떤 특정 지역이나 민족주의 음악을 쓸 때에는 세계적인 음악으로 도약하는 데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는 점을 감안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지역적인 특성이나 자기 것을 배제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 것을 보편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교향곡의 경우 ‘운명’이나 ‘비창’ 등이지 어떤 독일 애국가, 혹은 핀란드의 애국가(핀란디아) 등은 아닌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미국(아메리카)을 그리고 있는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 정도 이겠지만 이마저도 향수라고 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지 그것이 미국이란 나라를 그리고 있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스메타나의 ‘몰다우’라는 음악을 좋아하기 까지는 참 오랜 세월이 걸렸다. 타인의 나라의 아름다움을 그린 작품이어서 인지 먼저 인간 스메타나를 이해해야만 했다. ‘몰다우’ 등이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악으로 자리잡은 데는 3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본다. 첫 째 작곡가의 우수한 실력이다. 둘째 표현하고 있는 곳(몰다우)의 실제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셋째가 자긍심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셋째인 자긍심일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자긍심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스메타나의 나라 체코인도 그러하겠지만 우리나라 민족만큼 애국심과 민족애가 강한 민족도 드물다. 자기 것… 자기 민족, 자기 핏줄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해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그것은 국토 한반도의 아름다움… 또 이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스메타나(1824-1884)라는 작곡가는 작곡가이기에 앞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는데 당시(1850년경) 체코는 오스트리아의 통치하에 있었다. 스메타나는 프라하에서 문인들과 손잡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국민음악 작곡에 열정을 쏟았으며, 오페라와 함께 그가 말년에 작곡한 교향시 ‘나의 조국(My Father Land)’이야말로 그 애국 정신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6곡으로 이루어진 교향시 중에서 2번째 ‘몰다우’는 듣는 이에게 영혼의 고향, 마치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찬란한 초원과 물줄기를 바라보는 듯 희열에 젖어 들게 만드는 곡이다. 체코의 국토를 가로지르는 몰다우 만큼 아름다운 강도 세계에 드물다고 한다.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 모두가 으뜸으로 추겨 세우는 것도 몰다우가 흐르는 체코의 자연이다. ‘몰다우’를 들으며 살리나스의 초원을 드라이브하다 낙원이 있으면 아마 이런 곳이 아닌가 하는 환상에 젖어 본 적도 있었지만 ‘나의 조국’에서 그려진 체코의 장엄한 모습이야말로 음악을 초월하여 만인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는 작품이라 하겠다..
인간은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스메타나의 음악이 주는 감동은 ‘운명 교향곡’ 등과는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이었다. 이 곡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선율이었으나 가장 완벽하게 자연과 동화되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표출할 수 없는 순수, 희망, 희열…의 언어가 넘쳐나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순간 속의 영원이라고나 할까, 그 무엇보다도 음악이 주는 한계적 존재로서의 영원성의 도전이라 할 것이다.
세계의 유일한 긍정은 아마 자연에 대한 감사일 것이다. 종교 조차도 존재를 무상한 것으로 결론 짓고 있는 가운데 자연만은 어쩐지 인간이 살과 뼈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닌, 세계의 한 부분임을 투영해 주는 것만 같다. 스메타나가 ‘몰다우’를 작곡하던 당시에는 귀가 완전히 먹었을 때였다. 이때 스메타나는 침묵의 희열 속에서 대작들을 완성해 나갔는데, 아마도 가장 완벽한 침묵 속에서야 비로소 스메타나는 신(자연)의 계시를 받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영원한 안식처, 고향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누구나 기분이 좋다. 그저 스쳐가는 시골풍경, 초가마을 정경만 봐도 전설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만 같고, 흐르는 강물에 손만 담가도 ‘강바람… 산바람…’ 동요가 절로 흘러나오는 곳. 청포도가 익어가는… 아, 가보고 싶은 그 곳… 고향의 자연을 생각하며 ‘몰다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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