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나 아름다운 공원의 산책로를 걷다보면 군데 군데 나무의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누구의 아버지, 혹은 친구를 기억하며 라고 씌여진 글귀를 자주 만나고는 한다. 그러면 나는 그 의자에 앉아 생전에 그 장소를 무척 사랑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를 떠올려보고는 한다. 아마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도 가끔 그곳을 찾아와 그와의 추억에 잠깐씩 잠기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지난 주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까지 이어지는 40일 동안의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그날 저녁 미사에서 짙은 회색빛 재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으면서, 아둥바둥 하루 하루 살아도 우리는 흙에서 와서 한줌의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평소에는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죽음에 대해서 묵상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느 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친구들과 같이 따라갔던 장지에서 관에 흙이 덮히는 것을 바라보고 집으로 돌아왔던 그 아름다운 봄날, 마음이 얼마나 먹먹하고 허무했었는지 모른다. 그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지 않은 시간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싶어하고, 또 가지지 못해 안달하고, 나에게 상처를 준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아 가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 들고 더 높이 올라가 위세부리고 싶어하는 이 지상에서, 순수하고 고귀하고 아름다운 천상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가지려 하기 보다는 가지지 못한 이들을 돌아보며 나누고, 세속적인 성공을 향해 다른 이들을 짓밟고 올라가려기 보다는 세상의 낮은 곳으로 고통받고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가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과 평화, 선함을 추구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은 이 어두운 지상에서 밝은 천상의 빛을 던져준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 편에 서서, 눈물어린 하소연을 들어주고 외로운 마음을 다독이며 그들을 보살펴 주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하는 기나긴 조문행렬과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라는 짤막한 비문이 나의 마음을 오래도록 울린다. 그분은 무소유의 겸허한 삶을 사셨지만 무엇하나 아쉬울 것 없이, 이 세상에서 비빌 언덕없는 사람들에게 바람막이와 커다란 나무그늘이 되어 사랑을 베풀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말씀을 남기고 떠나가셨다.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면 사랑을 받아도 행복해하지 못하고 아이처럼 칭얼거리는 사람들이 있고, 늘 더 많은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빛이 난다는거다. 하느님이 맡기신 소명을 다하고 평안히 영면하시는 그분의 마지막 모습에서 천국문이 훤히 열린 듯하다.
결국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을 얼마나 버리고 살았는지가 그 사람이 향기로운 삶을 살았는지, 아니면 썩은내 나는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발은 현실에 굳게 붙이고 머리는 천상의 것들을 추구해야 할텐데, 생의 절반을 살아낸 나는 아직도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며 헷갈려할 때가 많다.
정갈한 삶을 살다 가신 고 김수환 추기경님을 떠올려 보면서, 한 사람의 삶은 어쩌면 생의 마지막 그 짧은 비문 하나로 알 수 있는게 아닐까 싶어진다. 그러고보면 얼마 전까지 내가 마음 속에 지니고 있었던 ‘지가 구운 빵이 맛있다고 그렇게 먹더니…’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그 분처럼 훌륭한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이제는 나도 조금이라도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부활을 준비하는 이번 사순절에는 나의 비문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무엇으로 해야하나? 그것에 잘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