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스버그- 그 이름을 명예롭게 하라!”
무슨 국가행사나 왕관 수여식에서나 있을 법한 문장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래 전 칼스버그라는 맥주의 광고카피였다. 덴마크 왕실로부터 왕실 문양을 넣을 수 있도록 허가받은 만큼 자랑스러운 맥주를 그렇게 광고했던 것이다.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잘되면 이름을 떨치지만, 못되면 행적이나 결과는 물론 이름부터 잊혀지기 때문이다.
지금 오바마라는 이름은 흔들리는 미국 경제에 희망을 가져올 이름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결과가 나타나면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지는 지켜 봐야 한다.
몇 년 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한국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 김삼순은 본인의 멋없는 이름을 바꾸려다 결국 본인의 이름을 건 케익 가게를 내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사는 여자의 이름으로 기억되었다.
사람의 이름만이 아니다. 많은 회사들이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제품명, 회사명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름 하나로 회사가, 경제가, 사람들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토롤라를 제치고 노키아에 이어 휴대폰 시장 2위 자리에 올라있는 삼성 애니콜. 이제 삼성의 이름은 세계적인 회사의 이름으로, 애니콜은 품질 좋은 휴대폰의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명성 덕분에 중국에서는 ‘애미콜’이라는 모방 이름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얼마 전 수퍼보울 게임 중간에 나온 현대자동차의 광고는 이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렉서스, BMW 등 다른 럭서리 자동차 회사들이 현대 제네시스가 ‘2009년 북미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된 사실을 놓고 ‘현대’ ‘현대’를 외치며 다들 본인들이 진 것에 분노하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카피가 인상적이다. “단지 작은 상 하나를 탔을 뿐인데… 갑자기 모두들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군요. 선데이와 비슷한 현대입니다.”
제네시스의 쾌거는 단지 제품명의 승리라기보다는 자동차 회사로서 ‘현대’라는 이름의 자부심과 세계 시장에서의 인정이라는 큰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늘 “현다이?”라고 부르는 경쟁자들이 제대로 이름을 말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성공을 더욱 위트 있게 강조했다.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책임감이 뒤따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잘 되도, 못 되도, 바로 내 탓이 되기 때문이다. 오래 전 직장에서 한 상사는 “이름을 걸고 카피를 써라”는 주문을 했었다. 여러 명의 구성원이 있는 팀으로 일하다보면 어느 순간 묻어가기에 안주하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름을 걸고’라는 말을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나는 듯 했다. 내 이름을 걸고 부끄럽지 않은 카피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거는 것은 또한 보증이다. 마켓에서 식품을 사다보면 원산지 표기와 함께 그 물건을 직접 만든 사람의 이름이 써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야말로 이름을 건 제품이기 때문에 믿고 살 수 있음을 보증한다. 이름을 보는 순간 갑자기 강원도 어디선가 나물을 말리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이 상상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름을 걸고 만든 식품이니 괜찮겠지 라는 안심이 든다.
지금은 익명의 세상이다. 닉네임으로 정보를 찾고, 닉네임으로 동호회에 가입하고, 이름 없이 토론을 즐긴다.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뒤편에 물러서서 세상을 관망하는 사람들 틈에, 이름을 걸고 사는 사람들은 돋보인다. 이름을 걸고 경쟁하는 회사들은 믿음이 간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어떤 이름을 붙여줄까 고민하는 만큼,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애써야하지 않을까.
유정민,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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