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는 신(神)이 있다. 신이 노는 곳이다. 불이 켜지는 곳이다. 전등도 켜지고 가스불도 켜지는 곳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이웃집의 부엌은 그 집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곳이다.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으면 그 집 식구들이 아직 자지 않고 무언가 하는 것이며 이른 새벽에 불이 켜지는 것을 보면 그 집의 누군가가 벌써 일어난 것이다.
환자가 사는 집은 부엌창에 불빛이 잘 비추지 않는다. 신이 놀지 않거나 떠난 집이다. 부엌에서 해피한 여인은 그날이 몹시 행복한 날이다. 부엌에 서기가 짜증이 나고 부엌에 서기가 싫은 여인의 그날은 그녀의 불행한 날이다. 독신 수행자인 출가사문들도 부엌하고 깊은 관계가 있다. 입산하여 행자가 되면 부엌일이 대부분이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며 간식도 준비하고 설거지도 하면서 견습 스님이 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아주 드물게는 신(神)을 만나는 사람이 있다. 접신이 된 것이다. 신과 선이 닿는 것이다.
천태산의 국청사에서 부엌일을 하던 습득은 부엌신을 만나 도를 통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신을 만난 사람이 선방이나 강원을 기웃거리겠는가. 물론 행복해진 사람이 수행의 힘을 빌릴 까닭이 없다. 도는 그렇게 부엌에서 통하는 것이다. 습득은 아궁이속의 치열한 불꽃을 보고는 이 세속의 일을 마쳤다. 그는 물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자기 몸속에서도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도는 먼곳에 있지 않고 가까운 곳에 있다고 예로부터 전해온다. 가까운 곳이란 바로 자기 몸이다. 그러니까 자기 몸에 도가 있다는 말이다. 누구나 자기의 한몸은 신으로 충만해있다. 자신(自神)은 자신이다. 이 자신(自神)이 불을 보면 화신(火神)을 만나고 산을 보면 산신(山神)을 만나며 바다를 보면 용왕신을 만난다. 이때를 접신이라고 한다. 도(道)의 핵심은 바로 이 접신이다. 신을 먼저 만나봐야 하는 것이다. 물건을 봐야 사고 말고 할 것 아닌가?
신으로 접근하는 통로를 道(길)라고 하는 것이다.
국청사의 화주승인 풍간 스님께서 마을에 내려가 돈과 곡식을 얻어 산으로 올라 오던 중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절에서 키운 것이 습득이다.
유일물하여(한 물건이 있어서) 시습득하니(이것을 주어서 얻으니) 명습득이라(이름을 부르되 습득이라 했다) 그런 그가 부엌에서 신을 만나 도를 통하니 원래의 잃어버린 자기를 도로 찾아 습득이란 이름값을 해 낸 것이다.
그는 이렇게 시를 읊었다.
“한번 쌍계에 들어온 이후로는/ 봄날이 오고 가는 계산을 잊었네/약초를 캐어 달이며 산지 얼마이던고/ 진흙 부엌 돌냄비에 자주 끓이고/ 흙 시루에 오래 쪄서 그 맛이 별나다네/ 누가 깊은 산 찾아와 이 음식 먹을 것인가/ 나와 구름과 시냇물이 있을 뿐 딴사람은 없구나/ 나이는 늘어져 가도/ 손짓하며 서있는(천태산의) 저 바위여/ 나 끝내 여기살아 산문을 나서지 않네/”
불계춘이라. . 봄날이 오가는 것을 헤아려 본적이 없나니 저 세월 밖의 소식을 듣고있자니 감동이 가득차 오른다. 절 뒷산의 바위를 쳐다보고는 천년의 손짓을 읽어 내는 습득이 산문을 나설 까닭이 있겠는가.
쌍계는 양쪽 골짜기의 물이 합치는 곳이다. 아마도 국청사는 천태산의 그런 곳에 세워진 절인 모양이다. 지리산의 하동쪽에도 두골의 물이 합수가 되어 쌍계라 부르는 곳이 있고 그곳에는 벗꽃으로 유명한 쌍계사가 있다. 쌍계의 물인가하면 곧 섬진강에 이르고 강 양안의 절경은 지리산의 산그늘을 받아 천하일색을 이루고 있다. 약초를 캐어 숯불에 달인다 함은 습득의 일상이기도 하려니와 그의 내심에 불꽃을 발견하고는 그 불꽃으로 업보의 어두움을 걷어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접신을 하면 업보는 물러서고 길(道)를 트여주는 것이다. 다만 길일뿐 산(업보)은 그대로 있다. 이것을 알아야 수행인의 오만방자함을 막을 수 있다. 견성을 했네 득도를 했네 합시고 헛수작을 하는 것이 벌써 산사태가 나서 길(道)을 불통하게 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길을 냈다고 산(업보)이 물러가랴, 강(흘러서 전함)이 없어지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또한 길이 있는 산이요 다리가 있는 물이다. 길을 알면서도 업보에 얹혀사는 보살의 길을 보여준 습득이다.
고맙습니다. 습득이시여 봄날에 당신의 시를 읽다니.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