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전하고 전도지 배포
무슬림이 거절않고 가정을 방문토록 한 것에 하나님께 감사
오늘의 사역을 정리하면서 깊이 느낀 점은 나의 아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아빠로서의 주고 싶은 나의 심정을 다 주지 못함에 대한 회개였다.
나의 아들은 말을 듣지 못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농아다. 더 쉽게 말하면 청각 장애자이다. 부자지간에 불행하다는 말도 아니요, 농아를 가진 아비로서 부끄럽다는 말은 더 더욱 아니다. 그 문제는 이미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해결 받은 부분이다. 하나님께서 어느 가정에 맡길까 고심하시다가 우리 가정을 믿기에 안심하시고 맡기신 것을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에 너무 감사하고 그래서 그 아들로 인하여 우리 가정은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 주님과 늘 함께하는 행복한 가정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내가 이들을 향하여 들려 주기 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요, 아들이 느끼고 깨닫기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하루의 랭귀지 코스를 마친 내가 무슨 수로 그들에게 예수를 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단 말인가? 그런데도 나는 지금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곳에 와 있지를 않은가?
내가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아들을 향하여 아비가 널 사랑한단다 하고 알려 주기를 간절히 소망 하였던가? 지금도 아들과 수화로 대화를 하면서 잘 통하지 않으면 포기하는 나 자신이 아닌가? 아들아 미안하다. 더욱 노력을 해야 하겠다.
또 교회 지체들과 이웃에게 미안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나의 잣대를 적용하면서- 대화하기를 포기한적은 얼마나 많았던가? 나만 주님만 바라보면 됐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주님은 나의 시선에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아니 하신데…
인간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믿지 아니하여 바벨 탑을 쌓아 올리는 악행을 저질러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언어를 흩으신 사건이 생각이 난다. [표준새번역]창 9: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울 것이니, 다시는 홍수를 일으켜서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들을 없애는 일이 없을 것이다.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개역(혼용)]창 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世上)과의 언약(言約)의 증거(證據)니라 하나님께서 이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언약의 표시로 무지개를 보여 주셨건만, 패역한 인간이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다시 하나님이 물로 심판한다 하실지라도 아라랏산 보다 더 높이 탑을 쌓는다면 우리는 물의 심판으로부터는 안전할 것이 아닌가 하며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 하나님이 이제는 물로 심판치 않는다고 증거를 보여 주셨는데도, 하나님이 물로 심판하신다면 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먹어 버리는 인간들! 그들은 결국 하나님과도 언어가 단절되며, 더욱이 한 언어 한 지붕 아래 살던 인간의 대화가 끊어지며, 다투며, 싸우며 각자의 길로 헤어지게 되지 않았는가?
너무나 그 분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과 교제하시며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부활하게 하셔서 예수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시어, 천국 방언을 말하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 앞에 바벨탑을 쌓는 잘못을 저질러, 하나님이 주신 방언으로 인간이 흩어졌지만, 이제 다시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음으로 새 방언을 받음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우리의 지체와 한마음 한 뜻으로 하나가 되게 해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제 주안의 모든 지체를 향하여 사랑의 한 언어를 깊이 나누워야 하겠다.
다음 다음날 본격적인 사역이 주어졌다. 침투사역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무전 여행이요, 또 다른 말로 하면 빌어먹는 것인데 이것은 잠자리까지 해결해야 하는 것이기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사역은 1박2일 코스가 보통이다. 팀 전원이 익숙해 질 무렵에는 2박3일 코스의 사역도 잘 해내었다. 놀라운 점 하나는 러시아어를 젊은이들처럼 못하는 내가 사역에 버틸 수 있었던 점은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신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영어를 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말이 영어의 단어와 비슷한 낱말들이 많아서 전체적인 그들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Telephone은 쩰리폰이다. 너무 쉽지 않은가? 베이스 캠프를 날칙의 한 모텔에 두고 우리는 각 조가 3명씩 짝을 지어 시외 버스를 타고 한 두시간 거리의 지방으로 간다. 그곳의 거리를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하고 우리가 준비해 간 러시아어로 된 전도지를 나누어 준다. 인터콥 본부에서 준비해 준 러시아 생활영어 소 책자 사전이 있지만 대화를 이어가기란 정말 힘이 든다. 솔직히 말해서 ‘안녕하세요’ 하고는 그냥 전도지를 주기가 일쑤이다.
더욱이 놀라운 점은 170여 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카프카스 지역에 러시아의 통치를 받으면서 러시아어가 공용어가 되었다. 러시아어가 아니었다면 복음을 잘 전 할 수가 있었을까? 아마 170개의 그들의 언어가 필요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감사를 드린다. 더 더욱 놀라운 점은 이미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잘 할 수 있는 고려인, 우리의 동포를 그들과 어울려 살게 하시고, 그들의 성실 함으로 말미암아 한국인이 전하는 예수가 아주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차기 FO팀이 그곳에 갈 때에 고려인을 만나면 더욱 감사하고 감사하기를 원한다. 그들의 수고와 성실한 삶의 태도가 우리가 전하는 예수에 100%의 무슬림인 그들이 거부하지 않고 우리를 대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인 것이다. 그들은 고려인을 까레이라 부른다. 까레이 파이팅!!
FO라는 말은 Find out our people의 줄인 말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혼을 찾자는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붙여 주신 영혼을 섬기자는 의미가 있는 말이다.
우리 팀은 조장 조준호 형제, 조원 송효정 자매, 조영호 강도사 3명으로 구성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지역은 우르밤이다. 먹는 밤이 아니고 날칙 베이스에서 버스로 1 시간 거리쯤에 위치한 곳이다. 우리는 먼저 손을 마주 잡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2번 시외 버스 터미널로 향하였다. 분명히 러시아 사람에게 드바(2번) 바그잘(정류장) 가는 버스를 물어 보고 탔는데, 도착해 보니 아진(1번) 바그잘이었다. 우리는 다시 물어 2번 바그잘로 가서 우르밤 행 버스를 탔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6.25 한국 전쟁 때에 러시아 군으로 참전한 노인을 만났다. 그는 82세이며, 인천과 서울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한 민국을 향하여 총 부리를 겨누었던 이 노인에게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집 주소를 우리 일행에게 적어 주고 꼭 오라고 하였다. 드디어 우리는 우리의 첫 사역지에 도착 했다. 우르밤! 낯설은 이름이며, 낯선 지역 이지만 그래도 기대가 된다.
이 곳은 까바르딘이라는 민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를 쓰며, 또한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다. 어쨌건 버스를 한번 잘못 타는 바람에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도착 하게 되어, 우리는 먼저 식당을 찾았다. 러시아어로 카페라고 한다. 영어의 카페테리아를 줄인 말 같다. 그 마을의 샤핑 몰인데, 주로 먹을 거리를 파는 조그마한 여러 개의 점포로 구성 되었다. 우리는 한 곳에 들러 튀긴 닭을 200루블(6달러)-미국에 비해 싼 가격이 아니다-에 한 마리 사서 나누어 먹고 남는 것은 싸 가지고 식당을 나왔다. 자 이제 어느 집으로가 전도를 해야 한다. 막막하다. 우리는 또 셋이서 손을 잡고 기도 하였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혼을 붙여 주세요!! 기도를 하였는데도 이 낯설고 막막한 영하의 추운 땅에서 여관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돌아가는 차편도 잘 모르고, 추우니까 길거리에 사람도 없는데,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속으로 하나님을 쉴 세 없이 부르며 방언으로 기도를 하며 걷는다. 두려움의 영악한 영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썩 물러 갈지어다.
마음에 평안함이 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일행은 동네로 들어갔다. 이 집 저 집을 두드려 보았다. 어느덧 저녁 해질 무렵이 되었다.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인기척이 없다. 낯선 동네에 들어 갈 때에 항상 먼저 반기는 것은 개이다. 동네의 개들이 이방인들을 향하여 한 마리, 두 마리 짖어 대기 시작하더니, 왕왕대며 합창을 하는 것이다. 어느 한 집의 문이 열리더니 중년의 한 사람이 우리를 쳐다 보다가 문을 닫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너무 반가와-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곳으로 달려 갔다.문을 두드리는데, 그 집 주인은 낯선 이방 객을 안에서 잠시 살피다가 문을 열고 우리를 맞는 것이다. 쯔드라스 브이체(안녕하세요)? 므이 까레이 뚜리스뜨(우리는 한국 관광객입니다). 우리의 말은 쉴 세 없이 계속 된다. 모쥐나 차이(차 한잔 주시겠어요)? 그 주인 말씀이 ‘다’(예)하며 허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 감사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서 감사한 것도 아니요, 그저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던 이 지역 사람을 한 사람 만 났다는 것이, 그것도 이 사람에 의해 따뜻한 차 한잔을 얻어 마시러 들어간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운 것이다. 우리를 너무 신앙이 없는 자라고 말해도 좋다. 그저 지금 이 집에 들어가고 있다는 이 사실이 기쁜 것이다. 우리 셋은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하나님께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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