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음악계는 유대계, 독일계, 이태리계로 삼분 될 수 있을 만큼 유태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데, 그들에겐 한가지 금기가 있다. 그것은 절대로 바그너의 음악을 이스라엘 안에서는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2차대전 당시 4백만 유태인을 학살한(홀로코스트) 주범 히틀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유태인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정치가였다. 바그너광이었던 히틀러는 감옥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강제로 듣게 하고, 수감자를 학살하는 독일병사들의 용기를 자극하기 위해 바그너의 음악을 사용했는데, 반 유대주의의 상징이었던 이 바그너의 음악을 이스라엘 안에서 연주시킬 수 는 없는 것이었다. 수년 전 다니엘 바렘보임이라는 유대계 지휘자가 이스라엘에서 예고도 없이 바그너의 작품을 연주, 정치적으로 사장될 뻔 했는데 아무튼 음악의 순수와 정치 사이에 낀 이스라엘 음악인들의 아이러니를 엿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요사이 세계경제가 말이 아니다. 오바마 정부의 연이은 경제 지원 정책에도 불구, 연일 계속되는 주가 하락으로 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온 세계가 피부로 느끼는 불황의 소용돌이 속에는 세계 금융업계을 주무르고 있는 유태인들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4백여 년 전에도 상황은 비슷했었듯, 셰익스피어가 풍자한 ‘베이스의 상인’에서 ‘빚을 못 갚으면 살 1파운드를 도려내라’는 유태인의 모습은 왠지 오늘날 금융위기를 가져다 준 그들의 원죄를 들여다 보는 듯한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Jewish로도 불리 우는 유대민족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방황하는 민족… 유태인하면 흔히 떠오는 것이 샤일록과 같은 수전노, 매부리 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선민의식 등등일 것이다. 또 떠오르는 것이 아인슈타인, 칼 마르크스 등 근대의 특출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는 점이다. 유태인들은 선천적으로 머리가 좋고, 탈무드 등의 교육방식으로 인재를 배출해 내는 데 능숙하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근본적인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는 오히려 민족주의 정신이 흐릿했고(시오니즘에 반대했음), 학교에서도 빵점짜리 학생이어서 좋은 교육의 산물이었다고는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을 잘 관찰해 보면 유태인들의 감추어진 이면을 파헤쳐 볼 수 있는데, 우선 주류에 잘 동화되지 않고 독자적인 상상에 빠져 지낸다는 점이다(괴짜형). 그리고 등에 무언가를 걸치고 다니는 데 이것이 바로 유태인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바이올린(음악)이라는 악기이다.
유태인들만큼 음악을 좋아하는 민족도 없다. 세계 음악 역사 속에 유대계가 기여한 업적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거니와 요사이에도 세계 음악계를 주무르는 인물은 모두 유태인들이다. 번스타인, 솔티, 발터…등 지휘자는 물론이요, 루빈스타인, 스턴, 주커만, 펄먼… 등 세계적인 연주가…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MTT)만해도 유대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이다.
유태인들이 왜 음악을 좋아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마 세계를 방황하면서 겪었던, 그들의 고통과 애환을 음악으로 승화시켜왔던 습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음악은 그들의 종교만큼이나 영적인 지주 노릇을 해왔던 듯 그들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만큼은 가히 존경스러우리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겠다.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작년 1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가 SF 심포니를 이끈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신문의 반응은 냉담했다. 우선 형편없었던 메시앙 연주는 그렇다 치고 그나마 기립박수를 받았던 말러의 심포니 1번 연주조차 작곡가의 의도가 표현되지 못했다고 무시하는 듯한 평론 일색이었다. 이곳 SF 심포니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유태계)는 틈만 있으면 말러(유태계) 연주로 청중들을 식상하게 만들곤 하는 골수 말러 신봉자(?) 중의 한 명이다. 이곳에서는 감히 말러 연주로서는 칭찬 받을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말러의 교향곡 1번(거인)의 연주 장면을 보다 보면 마지막 4악장 피날레에서 트럼펫 주자들이 벌떡 일어나 호화롭게 나팔을 부는 장면이 나온다. 꼭 그렇게 요란벅적 쇼를 펼쳐야만 음악이 장엄하게 들려오는 것일까? 잘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유태인들에게 음악은 그만큼 특별한 그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차안에서 FM으로 말러의 1번 연주가 흘러나왔다. 그처럼 장엄하고도 화려한 사운드는 들어본 적이 없는 연주였다. 라디오에서는 SF 심포니 연주, 틸슨 토마스 지휘의 말러의 1번이라고 했다. 증오의 편견과 혼돈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유태인들을 가리켜 신의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받은 민족이라고들 한다. 음악은 그들에게 고난일까, 아니면 축복일까? 개처럼 번 돈(재물)이 유태인을 상징하는 것의 전부라면 그들은 분명 저주 받은 민족일 것이다. 그러나 정승 같이 펼치는 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왠지 축복을 위해 천사와 씨름했다는 그들의 조상 (야곱) 이야기만큼이나 경탄스럽게 느껴진다. 고난이 없는 영혼은 축복의 세례도 느낄 수 없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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