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앞으로 화가로서 어떻게 자신의 그림을 프로모트 시키며 어떻게 화랑에 접근 하는가를 가르치는 클래스에서 교수님이 한 한마디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귀에 생생하다. “It’s all about the rejection. You have to learn to live with countless rejections. 뮤지움으로 부터, 화랑으로부터‘ 수많은 콘테스트에서 수십 번, 수백 번 거절당하는 것에 대해 흔연히, 상처 받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말고 계속 작품을 하며 계속 포트폴리오를 화랑과 뮤지움에 보내야 한다는 것. 어차피 내게 맞는 화랑을 찾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니 rejection을 수치로 느끼지 말며 상처를 받지 말라는 이야기다.
가끔 한국에서 온 화가라는 분들이 아름 아름으로 찾아와서는 미국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마땅한 곳을 소개시켜달라는 부탁을 해 올 때가 있다. 한국에서는 대개의 화랑이 임대하는 곳이어서 장소를 빌리고 화가자신이 도록도 만들고 초대장도 박아서 아는 사람에게 돌리면 되는데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화랑이 각각의 취향이나 수준에 따라 자신에 맞는 화가들을 발탁해서,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초대전 형태의 전시를 하기 때문에 누가 장소를 알선해주고 말고 할 여지가 없이 각자가 나름대로 제게 맞는 화랑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어서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말해오는 한국 화가들에게 힘이 되어줄 길이 없다. 그래도 이력서에 한 줄을 올리기 위해 꼭 전시를 해야 할 상황이면 한국 신문사라든가, 혹은 무슨 문화센터 같은 곳의 장소를 빌려 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전문인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좋은 그림을 걸어놓고 서 있어봐야 전시회라고 할수도 없거니와 정작 미술계에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도 처음엔 열심히 포트폴리오를 보냈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자신의 화랑에 관심을 갖고 이력서와 그림 슬라이드를 보내온 성의는 고맙지만 자신의 화랑과는 맞지 않아 도로 돌려보낸다는, 그렇지만 꼭 성공하기를 빈다는, rejection 편지와 함께 슬라이드가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 가끔 한두 군데서 흥미가 있다고 해서 개인전을 몇 번 가질 수 있었다. 오레곤, 덴버, 마운틴뷰, 팔로알토, 샌프란시스코, 엘에이, 새크라멘토... 그런 정도만 갖고도 일단은 프로패셔날한 화랑에서, 오직 그림 하나만 보고 받아준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위로인지 몰랐다. 반고호의 살아생전보다 내가 더 화려한 이력을 갖았다고 자신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산다는 게 때로는 남의 인정받으려 안간힘을 쓰는 몸부림에 다름 아닌 듯 느껴질 때가 있다. 왜 우리는 늘 누가 나를 알아주고 누가 나를 인정해 주는 것에 연연해야 할까? 그냥 하고 싶은 일이어서 하다가 행여 인정을 받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살수는 없는 것일까? 화가들을 봐도 그렇고 글 쓰는 이들을 봐도 모두 남의 인정에 목말라하며 누가 더 인정을 받나 싸우고 있는 것만 같다. 어느 정도의 선의의 경쟁은 긍정적인 창작열에 힘이 되어 질 수도 있겠지만 서로 피 튀기는 알력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파괴적인 동시에 삶을 피곤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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