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이란 낱말은 통속하다. 누군가 이를 낡은 잡지의 표지같다고 했던가.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르듯 늘 통속하게 불어오는 사랑이란 감정… 자신을 얼어붙게 만드는 아름다움, 혹은 절대 사랑을 찾아 헤매던 때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미모, 혹은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마음씨, 남다른 재능 등… 자신의 우상은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절대 아름다움이란 마음 속에나 존재할 뿐, 속세의 눈에는 신기루일 뿐이다.
‘스타 탄생’인가 하는 영화가 개봉하던 겨울이었던 같다. 시내(서울)를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자 한 낯익은 소녀가 다가와 팔짱을 끼는 것이었다. 교회에서 한두번 본 여학생인데, 왠지 용감한 그녀에게서는 고향 같은 따사로움이… 환한 반딧불 같은 그 어떤 원시성이 풍겨져 오는 것 같았다. 그 때 좀 못생긴 그녀가 왜 좋아졌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아마 다른 애들과는 달리 남자답고 화끈한 면이 좋았던 것 같다. 가을 낙엽을 밟으며 언제나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의 집 앞을 지날 때도 그녀가 나올까봐 조마조마 했고, 가을 동산에 올라 홀로 걸으면서도 고독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그때는 사랑 자체 보다는 사랑한다는 감정을 더 사랑한 것이겠지만, 풋사랑은 허무한 추억과 함께 고독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었다. 황혼의 낙조, 고독한 음악… 그러나 환상은 깨기 마련이고 환상에게 깨어나면 언제나 혼자였다. 그렇지만 그 고통을 알면서도 그 때 그 고독을 사랑했던 것은 아마 인간이란 그 고독(사랑)을 마시지 않고는 살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자신이나 남을 흐뭇하게 한다. 꼭 남녀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기다리던 소식, 고대하던 합격, 새로운 만남, 생명의 탄생, 예술적 감동… 살아가면서 가슴을 뻥 뚫어주는 감격의 순간은 많다.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문학)를 만들고, 노래를 짓는 것도 이러한 삶의 감격을 연장하고 짝사랑처럼 무언가 순수한 감정을 되살리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는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푸치니의 유작이다. 주인공(티무르)이 불가능한 사랑에 도전한다는 내용부터가 다소 통속적이고, 전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비현실적이지만 노래만큼은 비할 바 없이 아름답다. 사실 오페라란 이야기 보다는 현실에선 이룰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노래로 변하고 신기루처럼 환상의 날개를 펼칠 때 비로소 우리는 현실보다는 막연한 환상에 젖어 가슴을 시원하기 뚫어주는, 짝사랑의 순간 같은 깊은 감격을 체험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리자면 단연 생각나는 것이 푸치니의 작품들이다. 그 중에서도 나비부인 중의 ‘어떤 개인날’ 그리고 투란도트 중의 ‘공주는 잠못 이루고’ 등에서 사랑의 원시성, 신기루처럼 피어나는 가득한 환상이 느껴져 오곤 한다.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날’은 주인공 핑커튼이 떠나간 뒤 뱁새가 둥지를 틀면 온다던 님의 소식이 없자 주인공 나비부인이 마치 기도하는 심정으로 노래하는, 깊은 애수가 담긴 곡이다.
- 이처럼 죽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처음입니다. 물론 절망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 때문에… 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겠지요. 이처럼 살아있다는 것이 절망으로 다가온 때는 없었습니다. 당신이 없는 세상은 빛 없는 밤일 뿐…, 현실은 너무도 멀고, 열망은 잿빛으로 죽어갑니다-
푸치니의 아리아들은 다소 비극적이고도 감상이 가득, 너무 대중적이라는 비판이 많지만 사랑이란 단어의 그 통속하면서도 깊은 연민과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어 그만큼 탁월한 작곡가도 없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소재로 한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또한 사랑에 대한 연민, 그 신비감까지 가미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명작이다.
옛 중국, 투란도트라는 공주는 과거의 원한을 이유로 자신을 사랑하는 모든 남자를 죽이는 잔인한 여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궁 앞에서 공주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먼나라의 왕자 티무르…. 목숨을 건 수수께끼에 도전,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지만 그의 앞에 기다리는 건 목숨보다는 소중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었다. 결국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 기꺼이 죽겠다고 하는 티므르… 이 때 부르는 아리아가 그 유명한 ‘공주는 잠못 이루고’이다.
아무도 잠들 수 없네
오, 공주여
별은 희망으로 빛나고, 당신의 순결한 방을 비추건만
오직 비밀은 내 가슴속에…
티무르의 절규에 결국 감동하는 공주…, 그의 이름을 알면서도 ‘너의 이름은 사랑’이라고 외치며 사랑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인생은 현실이다. 그러나 꿈이 없는 현실은 무덤이다. 진정한 희망도, 진정한 절망도 꿈을 꿀 때야 가능하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날이면 창문을 활짝 열어 보자. 그리고 지저귀는 새소리…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예전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던 그 때를 그리워해 보자.
▲3막 오페라 ‘투란도트’는 작곡가가 완성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제3막 마지막 부분을 제자 F. 알파노가 완성, 1926년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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