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슈비 거리를 지나는데, 눈 앞이 환해졌다. 이름모를집 뜨락에 벌써 매화가 활짝 피었다. 순간 콧날이 찡해졌다. 이른봄이면 뜨락 가득 매화가 피어나던, 한국의 우리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같이 사철 내내 꽃피는 동네에서는 꽃이 피든 지든 별무감동일 수도 있겠지만은, 겨울이 긴 지방에서는 초봄에 제일 먼저 피는 매화는 늘 감동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런 감동 때문일까, 예로부터 매화는 남녀노소 없이 사랑을 받아왔다. 그 중의 대표격인 퇴계 이황선생은 매화시만 백여수를 지었고, 많은 도인들이 매화로 게송을 지었다. 그 중의 백미는 역시 황벽 희운선사의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을 것 같으면 /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가 아닐까 싶다.
인고의 세월없이는 도를 트기 어렵다는 경책의 글이다. 道 뿐일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인내의 시간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세상에 흔치 않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라는 말이야 말로 진짜 인내 없이는 듣기 힘든 말이다. 너무 지당하여 찔리는 말씀이라 그렇다. 그런 말을 여기서 더 보태면 신경질이 나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애슈비 거리를 그렇게 오가도 나는 그 나무가 매화나무인줄 몰랐다. 아니, 거기 나무가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 그런데 봄이 되어 매화가 피니 그 나무가 매화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냐.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면 꽃으로 피는 수밖에 없겠다는 거다. 꽃은 꽃으로 피어날 때 비로서 그 존재를 인정 받는다.
특히 봄꽃들은 이파리 이전에 꽃부터 먼저 화안하게 터트려서 자기 존재를 밝힌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복사꽃… 그 나무들이 꽃터질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의 존재를 알게 된다. 매화를 모르는 사람한테 매화를 천만번 설명하는 것 보다 한 번 보여주면 그것으로 끝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으면 꽃으로 피어나라. 내가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봐야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러워하기도 한다. 서러워할 시간에 그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내가 착한 사람이라 인정받길 원하는가.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된다. 원하지 않아도 남들이 착한 사람이라고 알아준다. 절에도 나가지 않으면서 불자라고, 한국에서 많은 절에 다녔다고, 보시도 많이 했다고…백 말이 소용없다. 그건 자비로운 부처님도 안 알아준다. 절에 한번이라도 나가서 절 올리는 순간, 그는 불자가 되는 것이다.
‘내 전생에는 밝은 달이었지 / 몇 생이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퇴계 이황 선생의 시다. 자, 몇 생이나 닦아야 부처가 되겠는가. 부처가 되고 싶은가. 지금 부처의 행을 하면 된다. 오늘 당장, 부처의 모습으로 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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