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땅(샌프란시스코)에 첫 발을 내딛었던 때를 회상하면 떠오는 것이 ‘Muni(버스)’, ‘빅맥(Big Mac)’ 그리고 ‘비틀즈’다. 특히 비틀즈는 당시 알게 된 월남 친구 때문인데, 전쟁없는 세상… 평화를 노래한 비틀즈(존 레넌)의 노래(‘Imagine’)에서 늘 보트 피플(피난민)이었던 친구가 연상되곤 한다.
28년 전, 미국 땅은 참으로 생소하면서도 외로운 곳이었다. 부모님도 계시고 형제도 있었지만 낯선 땅에서 살아갈 일이 왠지 막막했고 겨울비와 함께 스치는 바람이 살갗에 너무도 차갑게 와 닿았다.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끼리 알아본다고 우연히 교실에서 마주친 친구와 나는 금세 친해졌고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씹으며 현실의 절망을 공유하곤 했다. 가난했던 우리가 갈 곳이라곤 맥도날드 식당 그리고 Muni(버스)를 타고 정처 없이 시내를 방황하는 것이 전부였다. 당시 맥도널드(식당)에 들어서던 모습을 회상하면 지금도 간간히 웃음이 나온다. 마치 중국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검객처럼 긴장한 모습으로 식당 안에 들어선 우리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마치 미지의 적을 대비하려는 듯 옷깃을 잔뜩 여미고 카운터로 다가섰다.
왜 긴장했는지, 긴장이 어디서 왔는지는 곧 다음 장면에서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메뉴 판을 훑어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큼지막한 빅맥 사인이었고 우리는 무리 없이 빅맥을 주문했다.
빅맥 프리스!
서투른 발음이지만 또렷이 빅맥(Big Mac)이라고 외쳤는데, 주문을 받던 점원(캐쉬어)은 마치 무엇을 못 알아 들은 듯 어쩌고 저쩌고 계속 쏼라거리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주문한 빅맥의 발음이 조금 잘못됐나? 당황해 하던 찰라, ‘Here?’ 뭐 어쩌고 그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 여기서 먹겠냐는 뜻인가 보구나. 우리는 자신들의 잽싼 판단력에 득의해 하면서 황망히 ‘Yes’라고 대답하자 ‘Those Chinese only understand ‘Here’’ 이라고 푸념하는 종업원의 목소리가 귀에 또렷이 와 박히는 것이었다.
웬 망신! 우리는 완전히 잡쳐버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빅맥을 씹고 있자니 느끼한 치즈 냄새… 고기도 뻣뻣한 게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알 수 없었다. 붐비는 식당 분위기와 함께 느끼한 내용물이 울컥 구토증이 일게 했지만 우리는 어쩐 일인지 용감하게 빅맥을 꼭꼭 씹어서 단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치운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는 마치 0.3초의 눈초리로 상대방 남자의 모든 것을 알아채버리고 만다는 여인네처럼, 빅맥 한 조각에서 이미 미국이라고하는, 자신 앞에 놓여진 험난한 세파, 억지로 삼킬 수 밖에 없는 그 느끼한 삶을 예감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을씨년스런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우울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우리는 막연한 절망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버스에 올라 이곳 저곳을 방황했다. 라디오에서는 존 레논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팝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비틀즈를 들으면서 음악처럼 번지는 도시의 우울, 푸른 랩소디를 마음 속으로 절규하였다. ?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무정부와 무종교… 평화를 외치던 존 레논은 그 해 겨울(1980년), 그의 노래 (평화)의 절규를 뒤로하고 한 정신병자가 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괴테가 말했던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생을 논할 가치가 없다고. 그 때 그 시절의 빵에서는 왜 그처럼 노숙자와 같은 설움이 밀려왔는지…. 아마도 비틀즈의 노래에서… 아니 친구에게서 풍겨져 오는 피난민적인 분위기… 집없고 나라없는 서러움이 겹쳐져 괜스레 집없는 천사, 들개처럼 방황하는 히피의 분위기에 젖어듬 때문은 아니었는지.. ‘눈물 젖은 빵’은 다분히 감상적인 표현이겠지만 빅맥은 그 후로도 고독한 삶에서의 끊임없는 동반자… 명멸하는 도심의 불빛을 바라보며 홀로이 빅맥을 씹던 일이 그 얼마였던가. 그 맛없는 빵을 사랑하였든 아니면 증오하였든 이제는 갈라서는 생각할 수 없는, 어느덧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미국 경제가 요즘 바닥을 치고 있는 데도 웰빙 바람으로 천대받던 빅맥이 호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 사이에 또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신문 컬럼에서 세계 경제 지표를 읽는 데 빅맥 판매량을 본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즉 빅맥의 판매양을 보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알 수 있단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많이 팔린다는 빅맥…. 결코 맛으로 보나 양으로 보나 선호할 만한 구석이 거의 없어 보이는 데… 그 특별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아, 빅맥! 허기진 입안에 차오르던 그 차가운 냉소… 비틀즈의 음악처럼 아리게 번져오는 과거여…
요새 또 겨울비가 지겹다. 차창을 때리는 겨울비를 바라보니 그 때 그 겨울… 그 시절의 노래가 떠오른다.
-상상해봐 천국이 없다고/ 해보면 쉬워/ 우리 아래 지옥 없고 … / 상상해봐 국가가 없다고/ 어렵지 않아/ 죽일 것도 죽을 것도 없어…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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