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는 지면에 활자화되는 글을 써도 되는걸까 의문이 들고는 한다. 대부분의 창작물이 그렇지만, 글은 쓰는 사람의 가치관과 내면, 인성, 정서까지,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은 강자들의 정당화인 정치와는 달리 작고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의 기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래서 더 내가 글을 쓸 자질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스럽고, 쓰면서도 늘 전전긍긍 하게된다. 게다가 나는 인생을 온 몸으로 부딪치고 깨지며 부서지려기 보다는,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살려고 주위 분위기 살피면서, 안온하고 편하게 살려들지 않는가.
천주교 신앙인으로서의 나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늘 깨어있어야 함에도,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드릴 때 옆에서 밤새 잠을 잤던 제자, 예수님이 붙잡혀가실 때 제일 먼저 도망갔던 제자가 바로 나의 모습 아니던가.
만나는 사람들은 나에게 요즘에는 글 잘 쓰느냐고 안부를 묻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줄 카드 한 장에 몇 자 쓰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글을 쓰냐고 궁금해 하기도 한다. 또, 암닭이 알 낳듯이 그렇게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빨리 좀 쓰라고 닥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그런 물음들에 나는 늘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웃고는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한 순간의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그때부터 소설을 쓰는 것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야기들이, 소설들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며 다가온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음악으로 나에게 오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나만의 색채를 입혀 소설 속 허구의 사람들을 창조하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 공간 속에서 그들의 삶과 운명, 이야기들을 만들어간다. 어느 날은 쓰려고 작정해도 써지지 않고, 쓰기 싫다고 안 쓸 수도 없는, 마치 알 수 없는 주술에라도 걸린 것만 같다.
짧은 소설이라도 끝날 때까지는 너무나 힘겹다. 학창시절에 시도 써 봤고, 수필과 신문칼럼도 지금 몇 년째 쓰고 있지만, 소설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시작한 이 이야기를 제대로 끝낼 수는 있을지……쓸 때마다 앞이 보이질 않는다.
아무리 노력이 중요하다지만, 재능 없으면 가지 못하는 이 길로 내가 무엇을 믿고 들어섰나 싶어지며, 나에게 조금의 재능이라도 있긴 한건지 회의가 들고는 한다. 그림이나 작곡도 이렇게 막막할까 싶어지며, 한번 가보라고 나에게 열려진 이 길은 늘 너무나 멀고 아득하기만 하다.
일년 전 등단한 이후로 처음으로 써 본 두 편의 단편소설들, 미국으로 입양된 여자의 유년 기억속에 남겨진 그림들을 그려낸 ‘남겨진 조각그림’과, 지상에서의 행복이 천국보다 머나먼 사람들의 이야기인 ‘천국보다 머나먼’, 이 소설들이 문예지 ‘문학저널’ 2월호와 그 몇달 후에 실린다는 연락을 한국에서 받았다. 어쨌든 힘들게 쓴 단편소설들이 버려지지 않고 활자화된다니 기쁘다.
작가로서의 가능성만을 믿고 나를 지지해주는 한국 문인협회 소설분과 회장이신 소설가 이광복 선생님, 소중한 조언을 해 주시는 소설가 신예선 선생님과 화가 최정 선생님, 나에게 무한정의 읽을 거리를 날라다 주는 알베르따 언니……글을 쓰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가족과 친구들, 이 길을 계속 가겠다고 약속 못하지만,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한 장의 사진을 얻으려고 며칠밤을 지새우는 사진작가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듣는 이를 눈물 흘리게 만드는 연주자들, 인간의 가슴 속 희노애락과 깊은 한을 서늘하게 풀어내는 판소리 명창들, 하나의 완성품을 위해 수십년의 세월을 바치는 사람들……고행과도 같은 이 길을 가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고개숙여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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