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으로 노숙자들에게 저녁 서빙하는 봉사활동을 하는 남편을 따라 다닌다. 지난 주말에도 서빙이 있었는데 한 열 살쯤 되었을까? 아빠를 따라 온 꼬마가 새로 왔다. 어찌나 열심인지 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런데 그에게서 식판을 받아든 한 무숙자가 음식을 푸는 여자분 들에게 “Thank you ladies! 하고 인사를 하니 갑자기 발꿈치를 높이 들고 그의 시선을 잡으려 애쓰며 큰소리로 자신의 가슴을 치고 I am a man! man! 하며 소리를 친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난여름이었다. 수박을 좋아하는데 잘 고를 자신이 없는 나는 수박더미 옆에 서 있다가 능숙하게 두들겨 본 후에 하나를 척 골라잡는 사람을 붙들고 나도 하나만 골라달라고 부탁을 하곤 한다. 그날도 기다리고 있는데 마땅해 뵈는 중국여자가 있기에 부탁을 했다. 그녀는 ‘나도 잘 모르는데 이즈음은 그냥 아무거나 집어도 좋더라고요.’하고 말은 하면서도 연방 이것저것을 두드려보기 시작해 나는 그냥 처분만 바라고 서 있었다. 그런데 그녀 옆에 서 있던, 한 일곱 살 쯤 되 보이는 계집아이가 내 눈을 똑바로 처다 보면서 ‘울 엄마도 모른대요. 울 엄마도 그냥 아무거나 집는 거라고 하잖아요. 울 엄마도 모른다니까요!’하며 내게 항의한다. 나는 우스워서 웃음보가 터질 지경이었지만 그 애의 자존심을 위해 꾹 참고 서 있다가 건네주는 수박을 들고 돌아섰다.
애들을 보면, 자기주장의 진지함과 딴에는 옳은 것을 위해 끓어오르는 정의에의 풋풋한 열정에 저절로 웃음이 떠오른다. 자신의 무언가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아 골을 내며 성질부리고 악을 쓰며 우는 애를 봐도 예전엔 짜증이 났는데 이즈음은 대체로 웃음이 난다. ‘너도 사는 게 맘대로 안 되지? 그래, 성질 부려봐라. 성질부릴 수 있을 때가 좋은 때다.’하면서.
나도 어렸을 때는 어른들의 느긋함이 참 싫었다. 시시비비를 명백히 밝혀내지 않는 태도가 비겁한 것 같고 똑 부러지게 처신하지 않는 게 부패한 것으로 보이며 자신을 위한 보호막과 권위로 나이를 들먹여 가며 적당히 넘어가는 것을 합리와 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른들이 ‘이즈음 젊은 애들은..’하며 혀를 차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젊은 애들을 싸잡아 매도하는, 속이 꽉 막힌 그런 노인네는 되지 않겠다고 결심을 굳게 했었다. 그런데 어느 새 내가 노인이 되어 이즈음의 젊은 아이들이 이해되지 않는 시기가 도래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문화의 차이에 정신이 멍했었다. 막연히 미국사람들은 모든 것에서 자유 분망할 것이라던 선입관이 있었는데 의외로 그들이 조용하고 책임감을 따지며 규칙적인 것에 놀랐고 우리 문화는 애걸하면 봐주는 구석이 있는데 그들은 모든 사건 경위를 차갑게 바라보며 절대로 애걸함에 넘어가지 않는 것에 암담했다. 문화가 다르다는 게 생각과 말과 행위에 그토록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인 것을 서서히 깨달으며 결코 넘을 수 없는 태산 앞에 서 있는 듯 뼈저리게 외로웠다. 그때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도랑에서 문화차이만큼 큰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나이 들고 보니 세대 차이에서 오는 몰이해는 문화차이보다도 더 엄청나게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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