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 스님(새크라멘토 영화사 주지)
오래전 한국에선 덩달이 씨리즈라는 것이 유행했었다. 주인공 덩달이는 그 이름이 말해주듯 아무 생각없이 덩달아 사는 캐릭터이다. 이 씨리즈중에 글짓기가 있다. 이를테면 선생님께서, ‘자신감’이란 단어를 넣어서 글을 지어 오라고 한다, 덩달이는 ‘할머니가 수정과에 든 잣을 보시고, ‘이것이 자신감?’ 하셨다’ 는 식이다. 어느날은 ‘삶’이란 단어가 숙제로 주어졌다, ‘삶이라…’고심을 하며 학교를 나서는데, 학교앞 구멍가게에 이렇게 써 있었다. ‘삶은 계란, 50원.’ 덩달이는 ‘삶은 계란이다.’ 라고 써서 숙제를 냈다.
각설하고, ‘때로 배우고 익히니 이 아니 즐거운가’ 공자님 말씀도 있듯이,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수학, 물리, 철학... 그렇게 평생을 배워도, 삶이 무어냐 물으면 선뜻 말하기 힘들어진다. 유명한 철학자나 성현들이 삶에 대한 견해를 내놓기는 했다, 그러나, 바로 이게 삶이라 말하긴 힘들다. 왜그럴까. 그건 우리가 삶이 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은 무엇인지, 왜 시작됐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개념화시킬 수가 없다. 인류는 늘 선조들이 살아온 방식대로 덩달아 살아왔다. 어릴적 ‘왜 사나요?’ 하고 물으면, ‘쓸데없는 생각 말고 하릴 없거든 마루나 닦으라,’ 는 게 어른들의 말씀이었다. 사실 그 말 속에는 큰 가르침이 숨어 있다. 영양가 없는 일에 허송세월 하느니, 지금 이순간 실질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게 삶이라는 것이다. 진리는 언제나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곁에 있는데 우리가 안 볼 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그렇다.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過去心도 不可得이요 現在心도 不可得이요 未來心도 不可得’ 이라고 하셨다. 그게 먼 소리냐, 바로 空이라는 거다. 공이라면, 속된 말로 꽝이라는 거냐 ? 아니다. 꽝이란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흘러가는 존재, 無常의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 흐르는 강물이 있다고 치자. 그 위에 꽃잎이 한 잎 떨어졌다고 치자, 그러면 그 꽃잎이 만나고 있는 물은 아까의 그 물인가, 지금 이 물인가 아니면 흘러갈 물인가. 그렇다, 삶은 이렇게 끊임없이 흐르고 있으므로, 바람처럼, 존재하지만 ‘이것’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다. 그것이 공이다. 삶이 그렇고, 만물이 그렇고, 당신이 그렇고, 내가 그렇다. 그래서 부처님은 ‘지금’을 살라고 하신다.
결론이 뭐냐, 삶은 계란이라는 거다. 지금 당장 삶아 먹든지, 남에게 베풀든지, 아니면 조심스레 보살펴서 품질 좋은 내생을 만들어내든지, 지금 뭐든 하는 것이, 쓸데 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똑 같이 주어진 계란이다. 이 계란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내 삶은 결정된다. 생각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할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행복한 삶은 이루어진다. 왜냐, 계란은 오래 내버려두면 썩기 때문이다. 새해엔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살았음 한다.
[동지스님 칼럼 격주로 게재]
본보는 이번주 종교지면부터 새크라멘토 영화사 주지인 동진스님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격주로 글을 써주실 동진 스님은 인천용화사에서 발심 출가, 운문 승가대학을 졸업후 현재 영화사 주지스님으로 있습니다. 동진스님은 매월 세째주일요일에는 오클랜드 보리사에서 금강경을 강해하고 있습니다. 칼럼의 제목은 밤낮 끊임없이 불을 켜서 꺼지지 않게 하는 의미를 지닌 무진등(無盡燈)으로 정했습니다. 동진스님의 심오한 칼럼에 많은 성원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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