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월말. 분주했던 연말연시가 어제 같은 데 벌써 2월을 노크하고 있다. 눈 깜박 할 사이에 지나간 시간들… 다람 쥐 쳇바퀴 돌듯 분주했던 삶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의문을 던져 보지만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인생은 연극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다. 인생은 시나리오 없는 연극, 삶을 헤쳐 나가려면 우리는 때로는 연극을 해야 한다. 그것이 위선이 될지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연극을 해야 한다. 인생은 무대요 사람은 배우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없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배우처럼 연극을 해야 한다. 장자가 말한 ‘꿈속의 나비’, 호접몽처럼 인생이 연극(꿈)인지, 연극(꿈)이 인생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인생과 연극의 다른 점은 연극에는 장막(커튼)이 있고, 인생에는 없다는 점이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막이 있다. 서로를 마주보고 있지만 장막이 가로 막혀 아무 것도 바라볼 수 없다. 너와 나의 모습은 장막 속의 너와 나일 뿐, 서로에게 의미란 없다. 마치 가면 무도회처럼 서로의 가면을 쓰고 각자의 연기에 충실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면 뒤의 모습을 두려워한다. 인생은 무대, 존재는 비극이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고독의 흔적… 또 하나의 나, 산다는 것은 누구나 홀로 걸어야 하는 외롭고 고통스런 무대이다. 인생은 연극, 시나리오 없는 비극이다.
비극하면 떠오르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그리고 소포크레스 등 희랍의 비극작가들이다. 특히 희랍의 연극에는 음악이 있었는데 이것은 근대 음악, 오페라를 발전시키는 기초가 됐다. 음악은 순음악과 극음악으로 나눌 수 있고, 오페라란 바로 후자인 극음악을 말한다. 순음악이 마치 풍경화처럼 서정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면 극음악은 보다 극적인 요소, 박력이 일품이다. 교향곡 등 순음악이 마치 도를 닦듯 조용하고 밋밋하다면 오페라는 시각과 청각, 무대라고 하는, 음악이라는 공간 위에 펼쳐지는 제 3의 연극(종합예술)이다. 이 음악이라는 공간 운용에 가장 탁월했던 자가 바로 이태리가 낳은 최고의 비가극 작곡가 베르디였다.
연극에서 세익스피어를 으뜸으로 꼽는다면 오페라를 논하는 데 있어 먼저 앞세워야 할 존재는 바로 베르디이다. 베르디는 ‘아이다’, ‘춘희’, ‘리골레토’ 등 수많은 명작을 남겨 이태리의 가장 추앙받는 비가극 작곡가로 명성을 남겼는데, 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이 바로 ‘리골레토’였다. ‘리골레토’는 빅톨위고의 소설 ‘환락의 왕’을 그린 작품으로 주인공이 꼽추이다. 위고는 ‘노틀담의 꼽추’에서처럼 꼽추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여러 번 그린 바 있으나 ‘리골레토’의 꼽추는 어쩐지 우스꽝스런 결말이 희극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 스칼라피칠레라는 자객이 등장한 가운데 리골레토 등이 부르는 4중창부터 이 우스꽝스런 작품은 음악이 펼치는 격정의 날개를 달고, 당시까지 유례없었던 가장 걸출하면서도 장중한, 진정한 오페라타를 탄생시키게 된다.
옛날에 한 꼽추가 있었다. 만토바라는 백작 밑에서 어릿광대 노릇을 하며 빌어먹고 사는 비참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꼽추의 더 큰 비극은 한 때의 사랑으로 딸(질다)을 낳은 데서 부터 시작된다. 꼽추는 딸을 낳았고, 몰래 감추고 살았다. 비극의 폭풍우는 꼽추의 딸이 바람둥이 만토바 백작에게 유혹당하면서 거치게 몰아치기 시작한다.
어느 천둥 번개가 몰아치는 날이었다. 꼽추는 스파라푸칠레라는 자객을 사주, 성밖 목로주점에서 백작의 시신이 피를 흘리며 강물에 던져지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에게 던져진 것은 백작의 시신 대신 그가 사랑하는 딸 질다의 피 묻은 몸체였다.
히히히, 하하하, 호호호, 흐흐흐… 같은 웃음 소리지만 의미는 각기 다르다. 칼을 가는 자객, 사랑하는 사람을 대신해 죽음을 예감하는 질다, 만토바의 죽음을 연상하며 히죽거리는 꼽추 리골레토… 삶과 죽음이 갈리는 극적인 상황에서 불러지는 사랑과 죽음, 운명의 4중창은 그 자체로 이미 큰 폭풍우가 되어 지켜보는 이들을 깊은 비애의 바다로 이끌어 간다.
산다는 것은 정말 지루한 무대, 질리도록 긴 터널이다. 때로는 분노, 정체 모를 불안의 노크 소리에 리골레토처럼 떨어야 한다. 아무런 실마리, 열쇠도 없이 걸어야하는 막연한 여행… 인생은 비극이다. 그러나 이 비극을 노래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생과 동물의 다른 점이다.
삶에서 섬뜩한 공허함이 밀려올 때면, 우리는 가끔 삶을 극 속으로 초극해 나간, 위대한 영혼들의 오페라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갈 볼 필요가 있다. 새해에는 장막을 걷고 오페라의 세계로 한번 빠져 보자.
▷ 3막 오페라 ‘리골레토’는 피아베 대본으로 1851년 베네치아에서 초연했으며 작품이 지니는 극적 효과 때문에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여자의 마음’ 등의 아리아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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