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유행하던 색은 고급스러움을 뜻하는 보랏빛 과 와인색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불황이 심해진 이즈음, 올해에 유행할 색은 미모사라고 한다. 선데이 브런치를 가면 곧잘 마시게 되던 미모사는 샴페인에다 오렌지나를 섞어서 만든 음료로 향도, 색깔도, 맛도, 부드러운 오렌지 빛이다. 언제나 올해의 유행은.. 하면서 의상이나 색깔을 예고하는 기사가 나오면 늘 의아해진다. 이들은 점쟁이인가? 아님 이들은 고도로 세련된 상술을 꿰뚫는 선동가인가? 무엇을 근거로 나온 말인가? 그들이 유행이라 이름 지으면 그것이 그대로 현실화되는가?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어떤 색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간간히 받는다. 모든 세상사가 변하듯 좋아하는 색도 나이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반짓고리에 있던 색색의 헝겊을 만지고 걸쳐보고 서툰 솜씨로 조각보도 만들며 황홀해 했다. 어렸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였는지 파스텔조의 보드라운 색과 망사같이 신비한 화려함을 좋아했었다.
십대 때는 어디에 있어도 무리 없는 옐로오커 류의 점잖음이 세련된 것으로 느꼈었다. 그런가하면 젊음이 폭발할 것 같던 시절엔 환한 초록색이 좋아서 하얀 땡땡이 무늬의 봄 코트를 입고 좋아했던 기억도 나고 노랑나비같이 화려하고 산뜻한 원피스를 즐겨 입었던 기억도 난다. 나중에 애기 엄마가 되고 살림하면서 공부하던 때는 사는 게 고달파서 그랬던지, 아님 젊음의 마지막 끝자락을 붙들고 치열하게 몸부림쳤던 때여서 그런지 검정색이 좋아 까만 물감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지도 못했던 세월도 있었다.
지금은 무슨 색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예쁜 색은 다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하다못해 한국 사람이면 아무라도 끓이는 김치찌개도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백인에도 예쁜 사람이 있고 못생긴 사람이 있는 것처럼. 빨간 색에도 예쁜 빨강이 있고 미운 빨강이 있고 노랑에도 예쁜 노랑과 미운 노랑이 있다. 색이 문제가 아니라 각각의 색이 지니고 있는 개성에 따른 것 같다.
색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것의 으뜸은 자연이다. 자연을 둘러보면 미운 색이 없다. 나무는 나무대로 꽃은 꽃대로. 벌판이며 산이며 흐르는 물도 모두 너무나 세련된 색이 조화로워서 자연 앞에서는 자연히 창조주에 대한 경외, 나 자신의 작고 작음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색깔로 느껴지는 또 다른 피조물은 사람.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색을 갖고 있다. 어느 사람은 늘 회색으로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화려한 무지개 색으로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서늘한 푸른빛의 사람이어서 차게 느껴지는 이도 있고 튀지 않는 주황색으로 따사하면서 편안한 사람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따뜻한 색, 조화로운 색을 선호하게 된다. 자신의 넉넉함으로 주위사람들에게 작은 빛이 되는 삶은 커다란 업적이나 성취 없이도 얼마나 밝은 위로의 꽃인가. 올해의 색이 미모사색이라고 하니 누가 주장한 것인지는 몰라도 잘 선택한 것 같다. 불황의 늪이 깊어 시름겨운 한해가 희망의 빛인 주황색으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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