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리콘밸리 롸이더스그룹-제7회 육아수기 동상
1980년 5월 15일 스승의날은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을 부여받은 날이다.
뱃속에 있을때부터 심한 발차기로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엄마에게 알렸던 아들 종원이가 태어난 날이다.
호기심도 많고 욕심도 많은 아이였지만 정도 많았고 너무 고지식해서 부모인 내가 보아도 답답할 정도로 바른아이였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일은 꼭 해내고야마는 적극성도 겸한 에너지 넘치고 승부욕이 강한 아이우리종원이...
신생아때 젖이 부족하여 겨우초유만 얻어먹고 우유로 수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우유가 받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하였다.
그로인해 잦은 설사와 감기로 면역력이 약해졌고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다.
아이 다섯살되던 1985년 생일날 아침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활발하게 잘 뛰어놀던 아이가 서울 할머니댁에 다녀오는 열차에서 계속토하며 늘어져 있었고 급기야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다섯살짜리아이가 머리가 아프다며 머리를 쥐고 온 방을 헤메며 토하기를 계속했다. 아무생각도 할 수가 없었고, 아이를 들쳐없고는 자주 다니는 소아과로 쫓아갔다.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의사선생님의 단호한 말씀만이 귓전을 때렸다.
아이는 불덩어리 그 자체였고 체온계는 이미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선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는 혼수상태로 빠져가고 쇼크로 인해 헛소리를 해대며 엄마만 찾고있었다.
밤새 아이를 끌어않고 잘못했다는 말을 되내이며 하나님께 기도할 뿐 아무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나님 이아이를 살려주시면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겠습니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교회도 잘 다니겠습니다 를 수없이 되뇌었다.
그렇게 아이를 끌어않고 잠시 잠이 들었었나보다. 눈을 떴을때는 어스름한 새벽이 밝아오고있었다. 그 요란했던 폭풍이 지나간듯 아이의 얼굴에 평온이 있었고 잠이들어있었다. 열도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그 날 이후 3주를 병원에 있었는데 한번도 열이 나지 않았고 뇌막염은 깨끗히 치료되었다. 첫번째 하나님의 돌보심이었다.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마마보이라 할 정도로 부모님의 말을 잘 듣었고 교회생활도 잘 하였고 학교에서도 모범생으로 공부도 잘하고 학급회장일도 맡는등 활발하게 생활하였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쳤고 조용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는 의젓한 아이였다.
우리 부부가 유럽 여행을 마치고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잠에 취해 정신이 없는데 전화벨이 울리는데 불길한 예감을 떨칠수가 없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목소리는 안심은 시키고 있었지만 위급함이 느껴졌다.
정신없이 응급실에 도착한 나의 눈에 온 몸이 피투성이로 눈티방티가 된 아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허리와 엉덩이뼈 골절에 안면 광대뼈에 금이 갔고 턱뼈가 어그러져 적어도 서너번의 수술이 필요했고 석달의 입원기간을 요하는 부상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두번째 돌봄이 있었고 아이는 삼주 만에 학교에 등교하게 되었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말했다. 두번째 하나님의 돌보심이었다.
아이는 부모인 내가 보기에도 답답하리만큼 바른생활이었다. 조급함이 없었고 그러면서도 누가 뭐래도 자신의 할 소리는 다 내는 아이였다. 사랑이 많았고 믿음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하나님은 나를 군대에 가지 않게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고3의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나를 따라 하루도 쉬지 않고 철야기도를 다녔다. 아빠 조차도 공부해야할 시기에 미잘친짓 한다고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아이는 한 번 마음 먹으면 변치 않고 묵묵히 따랐다.
그날도 철야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는데 샤워하고 나오는 아이의 종아리가 심하게 부풀어 올라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태가 심상치 않아보였고 종합병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결과는 너무나 엄청났다. 아직도 열여덟의 젊디 젊은나이에 만성간염이라는 엄청난 병명이 나온것이었다.
너무나 기막힌 진단에 할 말을 잃었고 이리저리 좋다는 데은 다 쫓아다녔다. 간의 특효약이라는 인터페론주사를 3주나 맞았지만 머리만 빠져나갔을뿐 수치는 조금도 변동이 없었다. 더 이상 방도가 없었고 더 이상 수치가 올라가지 않게 식이요법과 피곤치 않게 하는 방법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초의 일이었다. 잦은 피로때문에 자연히 성적은 뚝뚝 떨어져갔고 어려서부터의 희망인 의사의 길은 접어야 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성적을 많이 낮추어 집에서 가까운 안전한 대학에 하향진학해야만 했다.아들이 의사의 길을 접어야한다는 사실에 그렇게도 곳곳하던 아이아빠는 지각도 한번 안하던 회사마져 결근하고 식음을 전폐하며 가족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학교에 잘 다니고 견디어주고 있는것에! 만 감사할 뿐이었다. 체중이 15킬로그램이 감량될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아이는 입버릇처럼 하나님은 나를 군대에 보내지 않으신다라고 말하곤했는대 흔히들 말하는 ‘신의 아들’이 되어 군입대도 면제된 것이다. 세번째 하나님의 돌보심이었다.
그러던 아이가 미국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젊은 나이에 병마와 싸우고 있는 것이 불쌍하여 넒은 세상 한번구경하고오라고 보낸 길이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맏기고 큰 결심을 하고 보낸 어학연수길이었다. 아이는 미국생활에 잘 적응해나갔고 3개월 어학연수를 마치고는 주립대학에 합격을 했다며 자신이 못이룬 꿈을 미국서 이루고 싶다는 것이었다. 건강이 회복된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공부를 하겠다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 한번 올라간 간수치는 정상이 될 수 없다는 이론을 깨고 간 수치가정상으로 회복된 것이다. 15킬로그램이나 빠졌던 체중도 회복되었고 의젓하고 멋진 청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신학대학원에 다니며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아이다섯살 때 엄마가 서원한 주의 종에대한 기도응답이 아이가 유학하면서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고난과 역경을 통해 지금까지 훈련해 오고 계신다. 순간순간 돌보아 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일평생 아이들을 위해 한 주도 빠짐 없이 항상 지켜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굳센믿음과 앞길 선히 인도하여주옵소서라는 기도제목으로 감사를 드림에 대한 하나님의 기도응답에 감사올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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