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순례 4 / 이성재(오클랜드 성 김대건 한인천주교회)
이렇게 이스라엘 순례를 마치고 이제 요르단으로 넘어간다고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또 국경통과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렵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은 쉬웠고 요르단 입국수속은 간단하였다. 곳곳에 후세인 전 요르단 국왕의 사진과 그의 아들 지금의 국왕 압둘라의 사진이 보였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은 많이 서구화한 도시로 보였다. 그러나 기름이 나지 않는 중동의 나라 요르단은 아직도 여러 가지 경제 사정이나 사회제도 및 인프라가 미비한 것을 금시 느낄 수 있었다. 요르단 바로 옆에 전쟁으로 초토화된 국가 이락이 있음을 지도상으로 확인하였다. 우리는 암만에서 최고급 호텔 중 하나라는 호텔에 들었지만 한국의 삼류호텔 수준이었다.
요르단에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40년 동안 광야에서의 방랑생활을 청산하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숨을 거둔 출애굽 여정의 마지막 자리 느보산(Mt. Nebo)에 올라보는 일정으로 우리들의 성지순례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또한 고대불가사의의 하나인 페트라를 돌아보는 것도 빼놓을 수가 없었다.
암만에서 아르논 강과 십자군의 요새 케락성을 지나면서 150km 정도의 거리를 달리면 에돔과 모압의 접경지역에 “페트라(Petra)”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을 가는 길목에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을 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증을 해소했다는 “모세의 샘”을 찾아보았다. 이곳에서 하얀색 돔으로 이루어진 허름한 시멘트 건물 안에 바위사이로 흐르는 모세의 샘물을 볼 수 있었다. 다시 버스로 베드윈 유목민과 양떼가 가끔 보이는 바위 산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올라가면 페트라 유적지 입구가 보였다.
고대불가사의 페트라
고대불가사의의 하나인 대상도시 페트라는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안인이 건설한 해발 일천 미터지역의 산악도시였다고 한다. 높이 300m의 바위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페트라는 아직도 1/4밖에 발견되지 않은 광활한 유적지였다. 하늘을 가릴 듯 한 높은 암석들 사이로 미로와 같은 균열부분을 따라 협곡인 “시크(Siq)”를 2km 정도 걸어 들어가면 그리스 식 건축양식의 신전 같이 큰 건물이 보였다. 이 건물의 원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나 내부 벽면에는 십자가도 새겨져 있었다. 바위벽면으로 수많은 무덤과 크고 작은 납골당이나 사자의 모습이 정교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너무 짧은 시간에 잠간 들렸다 나온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 다음날 우리 일행은 암만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 “고대 크리스천 도시 마다바”를 거쳐 모세의 출애굽 여정의 기착지 “느보산(Mt. Nebo)”에 올라 가나안땅을 내려다보며 모세의 무덤위에 세워진 교회 옆자리에서 성지순례의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였다. 느보산 정상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갈릴레이 호수와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족이 아직도 증오와 분쟁 속에 살고 있는 가나안땅이 보였다. 프란체스코 수도원 신부들의 설명을 듣는 것을 끝으로 순례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암만 공항으로 향했다.
성지순례의 의미
이번 성지순례를 정리해보면 이집트와 이스라엘 그리고 요르단 지방 순례는 성지중의 성지순례라고 생각된다. 예수님의 발자취와 성인들의 업적들을 돌아보며 하느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나의 종교와 신앙에 근거를 두어 아는 것은 한 번 더 확인하고 모르는 것은 배우며 틀린 것은 수정 보완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왜 하필이면 이 황폐하고 불모의 땅을 성지로 택하여 예수님을 이곳에 보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 지역은 수천 년을 지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상생의 평화는 없고 증오와 갈등, 전쟁과 살생만이 계속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종교와 신앙의 목적이 사랑과 평화 그리고 화해와 용서라면 왜 거룩한 성지인 이 땅에는 아직도 평화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하느님은 처음부터 인간의 미래에 대한 어떤 계시를 보내기 위해 이곳에 예수님을 보낸 것이었을까?
또 하나 느껴진 것은 내 자신이 얼마나 편협하게 성서를 이해하고 교리를 알고 있었음도 알 수 있었다. 내가 믿는 종교도 잘 알지 못하지만 다른 종교에 관하여는 너무 무식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신앙을 경멸하고 타 종교를 타부시하며 배타적인 사고방식으로 “예수 천국 불신 지옥”만을 외치고 있는 한 이 땅에 진정한 사랑과 평화, 화해와 용서는 있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외치는 불신지옥은 예수를 바르게 믿지 않는 사람이 지옥을 갈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믿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예수님처럼 성모님처럼 살기 어려운 속물임도 한번다시 확인하였다. 마테복음 5장에 나오는 “너희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다.” 라는 구절을 되새기며 내가 어떻게 자신을 녹여 맛을 내는 소금이 되고, 내 몸을 태워 빛을 내고 남의 앞을 비추어 주기 어려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무 가혹한 요구를 하고 있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내 자신을 녹여 맛을 내는 소금은 되지 못할지라도 너무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게 간이 맞는 인간으로 살고, 내 자신을 태워 빛을 내어 남의 길을 인도하지는 못할지언정 하느님의 몫인 태양을 가려 남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인간이 되지 않고 하느님의 빛을 따라 살 수 있는 해바라기라도 되게 하여달라고 기도하며 이번 성지순례를 마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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