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실리콘밸리 롸이더스그룹(회장 박은주) 주최의 제7회 육아수기 공모에서 입상한 3명의 작품을 게재합니다.
지난 11월 13일 열린 육아수기공모 시상식에서는 금상에 수잔 김의 ‘눈높이’, 은상 이영아 ‘다시 엄마가 된다면’, 동상 이해란 ‘어린나무의 단비’등 3명이 상을 받았습니다. 입상작품은 금,은.동상순으로 3번에 걸쳐 매주 문화면에 게재할 계획입니다. 특히 금상을 차지한 수잔 김씨는 현재 본보의 ‘여성의 창’필진으로 매주 토요일에 글이 실리고 있습니다.
눈높이 / 수잔 김
많은 혼란을 겪던 아들, 급기야 낯 설은 모습으로 변화
간격이 줄면서 문제는 아들이 아닌 나였음을 깨달아
대학 진학을 앞둔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세대와 문화차이로 각자의 색깔과 무게를 달리한 상흔들이 얼룩져 먼 이국땅에서 가슴이 저밀고 갈증처럼 관계가 메어옴을 어찌 나만의 독백으로 그치겠는가.
눈만 뜨면 하루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각종 정보와 인터넷 등 매개체로 기발한 아이디어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현란한 연예인들의 옷차림과 춤 -어리버리한 나같은 주부한테는 보기만도 벅차다.
또한 변해가는 은어에 한국말도 못 알아들을 때가 있는가 하면 잘못된 점을 교묘하게 정당화시키는 드라마의 대사들이 난무하는 시기에 아이를 공부시키겠다고 뒤늦게 미국행을 탄 내가 영어까지 보태 졌으니 말이다.
더구나 아이들과의 견해차이는 이 넓은 땅에서 철저히 외롭고 사면이 막힌 암담함을 느꼈다.
딸아이가 고등학생때 가슴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을 때마다 참 많은 언쟁을 한 기억이 난다. 엄마의 옷차림은 촌스럽고, 가슴이 드러나야 세련된 옷차림이라고 생각하는 세대와 그렇게 자라지 못한 나와의 갈등은 당연했다.
맞벌이를 해야 살아가는 미국생활임에 늦게까지 일하는 통에 미처 아들을 돌보지 못했다. 아들은 가정에서는 한국식 교육과 학교에서의 미국식 교육, 집에서 허용이 안되는 것이 친구집에선 무난하게 지나갈 일들에 대해 많은 혼란을 빚더니 급기야 너무나 낯설은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곧잘 공부도 잘하던 아들이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성적은 완전히 바닥이고, 모양새는 번쩍번쩍 귀걸이에 온바닥의 먼지는 다 쓸을듯 한 바지를 입고 다니는 아들의 모습이 정녕 내 아들인가 싶었다.
너무나 변해버린 아들을 놓고 우리 부부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작전을 세우며 얼려도 보고 혼내기도 했다. 그럴때 마다 무섭게 달려드는 아들은 우리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찼고 호되게 야단을 치면 아들은 툭 하면 집을 나가곤 했다.
방학때가 되어 자유분방한 친구 집에서 며칠씩 있는가하면 생일파티에 가서 호기로 마신 술에 만취되어 온 그날 나는 밤을 꼬박 새우다 결국 하늘에 맡기고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친구집도 한계가 있을터, 갈 곳이 한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더이상 친구들 집에서도 받아주지 않자 결국 갈 곳이 없는 아들은 당연히 습관처럼 집을 찿았을때, 나는 냉정히 거부했다.
아무리 천지분간 못하는 철없는 아이라지만 아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가정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었다.
아들은 동네 공원에서 학교 놀이터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청하며 자기의 아늑한 방안 따뜻한 침대가 간절했고 어둠 속 칼날같이 달려드는 바람소리와 출렁이는 나뭇잎들은 마치 귀신이 되어 자신을 삼킬 것 같이 다가와 후회와 두려움에 떨었고 집없는 이들의 생활을 경험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한다.
미성년자라 위험할 수도 있었고 잔인한 엄마라고 하는 이도 있었으나 우리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행여 사회적인 문제가 될까 하는 걱정과 함께 부모는 무조건적으로 희생만함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들은 그야말로 엄마의 냉정한 태도에 놀라며 그 뒤론 두번 다시 집 나가는 일이 없었고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도 김치만 연거퍼 찾았다.
걱정과 실망과 분노로 이글거리는 단계를 지나 아들에 대한 집착이 허망하게 내려앉는 심정이었으나 이렇게 해서라도 아들을 찾고 싶었다.
꼬리를 내리고 들어오는 아들에게 가슴으로 크게 안아주며 나또한 아들로 인해 평생 해보지도 못한 거칠은 욕설을 내뿜었던 일에 대한 반성으로 화를 안내보는 연습을 해봤다.
큰 변화는 없는 아들을 보며 처음엔 힘들었지만 적응이 되었고, 아들이 외로워하는 소리, 공부가 힘겨워 피하고 싶어하는 소리, 친구들과의 갈등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또한 화를 참아보니 나와 이제껏 부딪혔던 많은 이들을 포용하지 못함도 후회가 되었고, 내려놓음과 마음 다스리는 법을 깨닫게 해준 아들이 고마왔다. 이제 아들과 나는 깊은 대화를 나눔으로 더욱 친해졌고 훈훈한 가족사랑 속으로 성큼 큰 모습을 하고 아들은 넉넉하게 돌아왔다. 다시 아이와 간격이 가까와 지면서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나였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한바탕 지나가고. 여전히 아들 방에서 빠른 템포의 랩 음악이 들려온다. 귀걸이와 팬티가 다 드러나는 바지를 엉덩이에 걸쳐도 어쩌겠는가. 그것이 그들의 세계라면 인정을 해줘야지.
분명한 것은 이곳은 미국이고, 신세대로 자라나는 아들만큼 나이들어가는 쉰세대로 나의 모습은 또 어떻게 변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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