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시외버스타고 다닐 때 인상 깊었던 것은 무덤이었다. 온 나라가 다 고만고만한 산을 안고 그 산자락을 치마폭처럼 펴서는 구불구불 계단식 논, 그리고 거기에는 영락없이 무덤들이 있었다. 지관들을 앞세워 명당자리를 찾는 게 조상님께 대한 큰 의무였던 우리네 의식 때문이었을까, 한결 같이 낮은 등성이 오목하게 둘러 앉아 양지바른 자리는 바람을 막으려 오무린 손바닥 안처럼 아늑했다. 눈여겨 보다보니 제법 감이 생겨 흐음, 저렇게 아늑하게 생긴 것을 보니 무덤이 있겠군, 싶으면 영락없이 무덤이 있었다.
이즈음은 살기가 좋아져서 분명 최근에 장식해 놓은 것이 완연한, 으리으리한 돌비석과 제상을 갖추어 놓은 곳도 많았지만, 별다른 장식 없이 호젓이 누워있는 낮은 봉분의 무덤이 그저 따스한 햇살만을 안고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면 자식 키우며 근근이 살던, 고생을 낙으로 알고 살았던 우리네 선조들의 소박한 부부의 모습이 느껴와 가슴이 따스해 왔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눕게 될 것인가. 인간의 관심이라는 게 서 있는 자리마다 달라서 이즈막엔 죽어서 어디에 묻힐 것인가, 혹은 화장을 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예전처럼 후손들의 영락이 묘지자리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서 묻힐 자리를 까다롭게 따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적어도 고향인 한국에 묻히고 싶다거나 혹은 이곳에 묻히고 싶다거나, 화장을 해서 의미 있는 장소에서 뼈를 뿌린다거나 아니면 납골당에 안치시킨다거나 하는 생각은 있는듯하다. 하지만 결국은 남아있는 사람의 의사가 중요한 거여서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아이들은 아무 상관이 없단다. 혹시라도 살다가 엄마아빠가 생각날 때 묘지에 와서 서성이다보면 그래도 엄마아빠 만난 것 같지 않을까? 했더니 돌아가신 엄마아빠는 묘지 아닌 어느 곳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다나.
그렇구나... 묘 자리를 미리 사두려다 그만 두었다. 지난 번 한국에 갔을 때, 가면서 내내 묘지를 가봐야 하는데... 하는 조바심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신부님께서 최근에 고령으로 돌아가신 거였다. 장례식에 참석하러 일부러 나가지는 못할망정 묘지에는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무뚝뚝하신 분이시지만 그 신부님 덕에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띄엄띄엄 소식을 나누고는 있었는데 한편으론 늘 잘해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 이었다. 천주교 용인묘지 맨 꼭대기에 모신 신부님의 묘는 새로 덮은 잔디가 파랬다. 누군가가 최근에 갖다 놓은 국화꽃이 초가을 환한 햇빛아래서 천연스레 피어있었다. 딱히 드릴 말씀도 없이 묘지주위를 얼마간 서성이다 돌아왔는데 그래도 가봤다는 사실 하나로 훨씬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창밖에는 계절을 재촉하는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이 비가 그치면 가을은 성큼 큰 발길을 내디딜 것이다.
나뭇잎은 속절없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들은 겨울바람에 슬픈 울음을 울을 것이고 우리는 또 하나의 소멸을 맞아 가슴 여밀게다.
그리고 소멸 뒤엔 항상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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