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는 참으로 귀한 축복이다.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는 서로를 분신처럼 느끼고 귀하게 여긴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떨어지면 그리움으로 마음이 저린다. 오십 줄을 넘어서면서 더더욱 친구와 형제의 존재가 천금처럼 느껴진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신분을 초월한 멋진 사귐이었다. 가난한 목동과 왕자와의 허물없는 사랑이었다. 관중과 포숙아 역시 시대를 넘어 아름다운 우정의 본보기로 기억되고 있다. 좋은 친구는 물과 물고기의 관계처럼(水魚之交), 생사를 같이 하는 문경지교(刎頸之交)를 이룬다. 입술과 이는 부드럽고 강한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서로 돕고 의지한다. 모든 것이 달라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우정의 힘이요 신비다.
참된 친구는 서로를 알아준다.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을 수용한다. 좋은 친구는 친구를 세워준다. 허물은 감싸고 장점을 돋보이게 하는데 주력한다. 숫돌이 되고 숯불이 된다. 스스로를 닳아지게 하면서 무딘 연장에 날을 세우는 숫돌처럼 좋은 친구는 자신의 삶을 마모하면서까지 친구의 삶을 세워준다. 불속에서 태어난 숯처럼 좋은 친구는 자신을 태워 재를 남기면서 친구의 삶에 불을 댕기고 화력을 돋운다. 좋아하는 성구가 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 27:17) 친구는 멀리 있어도 늘 가깝고, 항상 함께 해도 질리지 않는다. 대나무는 꺾이어도 그 색을 변치 않으며, 구슬은 깨어져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 참된 우정이란 이와 같다. 천만 가지 색깔 속에서도 그 고유한 색을 고집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의 섬광을 지켜낸다.
수년 전 <친구>란 영화가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영화에는 우리가 경험했던, 또한 경험하고 싶었던 우정이 단편적이긴 하지만 실루엣처럼 펼쳐져 있다. 오늘 우리는 진정한 우정에 목말라한다. 절친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아픔으로 괴로워하거나 분노한다. 정작 필요할 때 사방을 두리번거리지만 친구는 보이지 않는다. 옛 친구도 잃었는데 새 친구를 사귀기가 쉬울리 없다. 금방 사귄 우정으로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숙성시킨 장맛 같은 은은함과 깊이를 느끼기란 불가능하다. “친구”(親舊)란 말 자체가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귀는 사람”을 뜻한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위해 옛 친구를 버리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다. 친구는 매우 소중하고 귀한 존재다.
어느덧 더위가 저만치 물러갔다. 마음의 벗들이 한층 그리워지는 초가을이다.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켜켜이 쌓아올린 장작더미마냥 저물어가는 태양의 끝자락에서 눈가에 이슬을 머금게 한다. 이 해가 저물기 전에 고국을 방문할 수 있다면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그들과 함께 머물다 간 자리를 회상하며 추억여행도 해보고 싶다. 학창 시절에 함께 부르던 노랫말들을 세월의 색 바랜 악보를 넘기면서 더불어 합창하고 싶다. 반백이 되어버렸을 희끗한 귀밑 머리털을 헤아리며, 인생의 남은 여정에 남길 발자국 숫자를 상상하며 우리 모두를 위한 푯말이라도 하나 세워두고 싶다. 사랑하는 친구여! 우리 한번 만나 추억을 되씹고 미래의 강둑에 앉아 월척이나 한 수 낚아채지는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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