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피우며 누었는데 다리를 베고 누운 우리 멍이의 체온이 따듯하고, 묵직하게 그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렇게 멍이를 곁에 놓고 있으면 세상만사 다 잊고 그저 그대로 꼼짝 않고 한 세월 보내고 싶도록 푸근하다.
어렸을 때 엄마는 개를 무척 싫어 하셨다. 아니 개뿐만 아니고 고양이도, 병아리도, 모든 살아 움직이는 살의 느낌이 싫다고 하셨다. 나는 내가 어른이 되어서 모든 걸 내 맘대로 해도 되는 때가 오게 되면 꼭 개를 키우리라, 물고 빨고, 끌어안고 뒹굴고, 맘대로 주물러 터트리리라, 다짐을 했었다. 하다못해 ‘애니’라는 뮤지칼에서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뽀글뽀글한 파마머리를 하고 빨간 원피스를 입은 애가 오갈 데 없는 고아임에도 불구하고 제 덩치보다 더 큰 멍멍이를 다니고 다닌다는 사실에서 부럽기까지 했을 때니까.
이렇게 개를 좋아하면서도 실은 그 끝없는 수발들기가 겁이나 개를 가질 엄두를 못 냈다. 작은 아이가 몇 번이나 개를 키우자고 졸랐는데도 절대로 안 된다고 번번이 거절했었다. 그런데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이런 사정에도 적용이 되어, 학교 때문에 집을 나갔던 아이가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오면서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오고, 그 후, 또 다시 집을 떠나며 개를 두고 갔다. 그 사이 정이 들대로 든 이놈을 어느 누가 내다 버릴 수 있으리... 할 수없이 내 차지가 되었다.
데리고 올 때는 두 손바닥에 들만치 작았던 멍이는 하루하루 늠름히 자라더니 이제는 50파운드 가까운 덩치가 되었다. 하지만 작았을 때 정든 걸 어떻게 컸다고 갖다 버릴 수 있나. 색깔도 시커먼 놈은 누가 문간에서 기척만 내도 갈기를 세우며 길길이 소리 지르고 뛰어서 오는 사람마다 무섭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무서워 보이는 놈이 실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바보 놈이다. 식구가 옆에 있을 땐 달려들듯 날뛰는 게 정작 혼자 놔두면 아무리 남이 문을 부서져라 두들겨도 찍 소리도 못하고 소파 뒤에서 벌벌 떨고 있다. 아무데도 쓰잘 데 없다. 게다가 털은 얼마나 빠지는지 하루라도 청소기를 돌리지 않으면 주먹만 한 털 뭉치가 사방에 날린다. 덩치가 있으니 사료 값도 만만치 않고 집에 오는 손님들은 모두 한 마디씩 이런 개는 밖에서 키워야 한다고 넌지시 말을 건넨다.
그래도 굳건히 집에서 끼고 있다. 이놈을 안고 뒹구는 맛이 얼마나 좋은데. 데리고 나가 걸으려고 목줄을 챙기고 비닐주머니 챙기고 신발을 꿰려면 먼저 눈치 채고 엉덩이를 휘두르며 나서는 게 얼마나 신퉁방퉁한데. 소파위에 앉아서 눈을 감고 졸다가도 가까이 가는 기척만 느끼면 꼬리가 살랑살랑, 그러다 옆에 가면 드디어 맹렬히 흔들어 대며 좋아서 쩔쩔매는 모습. 누가 날 이렇게 반기겠어. 우리 낑이. 우리 깡패. 우리 바보.
내 사랑 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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