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보글보글 맛있게 찌개를 끓여서 정갈한 반찬들이랑 하루 세끼 나에게 정성과 사랑이 담긴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는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창밖에는 바람이 몹시 불고 차가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아이들에게는 과자를 구워주고, 김치와 풋고추를 넉넉히 넣은 매콤한 김치전을 넉넉히 부쳐서 나에게 작은 술상을 차려주는 아내, 가족들의 점심 도시락을 맛있고 예쁘게 싸주고, 김치를 담가주는 아내, 감기로 몸이 으슬거리며 춥고 아플 때 콩나물국을 시원하게 끓여주는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커다란 이불은 햇볕좋은 마당에 자주 널고, 작은 양말들은 손으로 비벼 때를 빼고, 부엌 행주는 삶고, 어둔 색과 밝은 색 옷들을 따로 깨끗이 빨아서 말린 후 차곡차곡 개어 옷장에 넣어놓는 아내, 후줄근하게 주름진 옷들은 잘 다려놓는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식구들이 어질러 놓고 나간 집안을 매일 매일 구석 구석 말끔히 치우며 먼지없이 쓸고 닦고, 창밖의 날이 뿌연게 아니고 원래는 맑다는 것을 알게끔 자주 창문을 닦아주는 아내,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리고 와서 집에서 만든 건강하고 영양가있는 간식을 먹이고, 숙제를 봐주고, 피아노, 수영, 미술, 축구, 한글학교에 데리고 가는 아내……이런 아내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님 우렁각시라도……이제는 꿈 속에서 조차 나는 부엌 구석에서 마늘을 까고 있거나 콩나물을 다듬고 있고, 다른 사람들 밥 걱정을 하고 있다.
넋두리 한번 해보았다. 여름내내 아이들과 부대끼며 밥을 해댔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한 달 휴가를 받은 남편은 아침 먹고 한시간 반도 안 지났는데 점심은 뭐냐고 물었었다. 매일 밀려 나오는 집안 허드렛일과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다시 밥상을 차려내야 하는 일상을 살아 내면서, 바닦으로 떨어질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산꼭대기로 다시 굴러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의 신화가 떠올랐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데 그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기본단위인 가정에 갇혀서 육아와 가족들을 위해 가사노동만 하는 전업주부들은 잃어가는 자신감과 사회적으로 희미해져가는 자신의 존재감으로 우울해하고는 한다. 자아가 강할수록 성취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 힘겨워한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건 생계를 위해서건 직장일과 가사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엄마들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이다. 선택이 무엇이던지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서 행복을 찾는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여자는 행운인 셈이다.
아내가 없으면 생기는 일상의 공백은 커다랗다. 그런 일상에 지쳤었나? 일 년만이라도 혼자 살아보고 싶다며 집을 나간 어떤 드라마의 엄마처럼 나도 이거고 저거고 문득 가족들을 위한 삶 말고 나 혼자 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을 때가 있다. 어디 나 뿐일까? 모든 아내들이 한번쯤은 꿈 꾸는 삶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우연히 펼쳐본 성경에 씌여졌던 글귀는 ‘한 알의 밀알이 그대로 땅에 떨어지면 한 알의 밀알이지만,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였다. 성당으로 달려갔던 첫 날, ‘모든 것을 잃고 탕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작은 아들을 용서해준 아버지’의 강론으로 나를 이끄셨던 하느님은 또 이리 나에게 이 땅에서 내가 관에 들어가는 날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시나보다.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과 탐욕을 얼마나 버릴 수 있는지가 그 사람의 인간적인 품위와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나는 자꾸만 잊어버린다.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되물어본다. 작은 열매라도 맺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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