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살이에는 실패가 있지만 수행에는 실패가 없어요
<7일과 8일 특별법회 열려>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은 지난 5월26일 곡기를 끊었다. 한편으로는 대량아사 위기에 놓인 북한 주민들에게 긴급 식량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다른 일에 치여 자신마저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을 망각할 것이 두려워 시작한 단식이었다. 물 몇 모금으로 밥을 삼고 소금 몇 알갱이로 반찬을 삼아 꼬박 70일을 버텼다. 워낙 오래 워낙 텅텅 비워버린 바람에 음식의 향수를 잊어버린 듯 그의 속은 8월4일 단식이 끝나고 한달 이상 지나도록 평범한 끼니음식도 예사로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과일 몇조각 푸성귀 몇잎, 묽은 국물 몇모금 등으로 ‘단식 후 절식’을 아직 계속하고 있다.
법륜 스님이 북가주에 왔다. 2일부터 20여일동안 이어지는 해외순회법회 일환이다. 시애틀 밴쿠버를 거쳐 7일(일) 북가주에 온 그는 바로 그날 오후 쿠퍼티노 디앤자 칼리지에서 한인들을 위해 3시간동안, 8일(월) 저녁에는 벽안의 스님이 주지로 있는 버클리 공문사(Empty Gate Zen Center)에서 백인 등 이웃 커뮤니티 사람들을 위해 법문했다. 장기 단식으로 수척해진 얼굴에다 목소리는 낮아지고 갈라졌지만, 그는 부처님 세상 얘기를 할 때면 늘 그렇듯이 질문에 호통에 비유에 유머에 온갖 방편을 써가며 신명나게 안타깝게 진지하게 법문을 이었다.
디앤자 칼리지 법회에서 그는 서두에 가능하면 부처님의 길을 흉내내면서 가고 싶다 수단으로 하는 게 아니라 불교를 단도직입적으로 하고 싶다고 자신의 소망을 빌어 수행정진의 참된 자세를 가리켰다. 법문 형식도 단도직입적이었다. 준비된 원고에 의존하거나 일방적 훈시를 하지 않고 즉석질문을 받아 즉석답변을 하는 즉문즉설 형식이 주조였다.
(나는) 불교인을 위해서니 불교를 위해서니 (정토회원이나 불자의) 숫자를 늘리고 이런 거에 관심이 없다. 나는 (내 언행이) 그들 각각의 인생에 도움이 되면 다행이고, 도움이 안되면 그들이 귀담아 안들을 거고,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이거는 순전히 그들의 선택문제라고 주체적 태도를 강조하자 누군가 물었다. 각자가 생각대로 산다면 법문은 왜 하시나요? 스님은 주저없이 대답했다. 물으니까 하는 거요.
만해대상 막사이사이상 민족화해협력상 등 그에게 안겨진 온갖 상을 꼽는 데만도 한참이 걸릴 정도인 실천적 수행자인 만큼, 뭔가 고상한 모범답안을 기대했을지 모를 이들에게 싱거워도 너무 싱거운 답변은 바로 그런 망상부터 내려놔야 된다는 가르침이었을 게다. 땡볕더위 속에 모여든 대략 100여 청중석에서는 가벼운 웃음이 일었다.
그의 수행관도 깃털처럼 가벼웠다. 하다보면 순풍이 불어 잘 갈 때도 있고, 역풍이 불면 잘 안가기도 하고…세상살이에는 실패가 있지만 수행에는 실패가 없어요. 수행을 우습게 여겨서가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하고 소박하게 산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발 뒤꿈치도 못미칩니다.
보다 일상밀착형 질문이 날아들었다. 화를 재빨리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화가 일어남을 전제로 답을 구하는 질문에 그 전제 자체를 무너뜨리는 스님의 답변이 이어졌다. 화를 참으면 속으로 병이 되는 위험과 결국에 폭발하는 위험이 따릅니다. 참을 것이 없어야 돼요. 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참을 일도 없어요.
작년 순회법회 때 나온 그 질문, 화두란 무엇이며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그는 작년처럼 자문자답을 섞고 선지식들의 예화를 곁들여 대답했다. 어떻게 들어야 하나, 들어서 뭐하나? 이렇게 되면 공부가 관념적으로 됩니다. 안들리는데요? 안들리면 놓으면 되지, 왜 들어야 되나? 이게 화두요. 공리에 문제제기를 하는 게 화두요. 거기서 나아가는 게 백척간두 진일보, 거기부터 참구가 시작되는 거요. 알음알이로 아는 것이 막혀야 참구가 됩니다.
스님은 북가주 방문 이틀째인 8일 낮 이스트베이 틸든 팍에서 정토회원들과 산행을 함께하며 못다한 얘기를 나눈 뒤 버클리 공문사에서 2차 법회를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LA로 떠났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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