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연휴가 시작 되는 토요일 아침, 남가주 재불련 회원들과 광고를 보고 찾아 온 템플 스테이 참가자들은 세 대의 밴에 나누어 타고 일로 북으로 달렸다.
푸른 태평양을 옆구리에 낀 채 서북쪽 해안을 깔끔하게 도려내던 101번 도로는 우리가 개비오타 휴게소에서 김밥과 병물로 요기를 마치자 곧장 짧은 터널을 지나 조금 내륙 쪽으로 뻗어 올랐다. 브래들리 못 미쳐 휴게소에서 한 번 더 쉬고 살리나스에서 방향을 틀어 남가주와는 산세가 조금 다른 푸른 골짜기를 조심스레 더듬어 갔다. 지금 우리는 미국 땅에 처음 생겼던 한국 절, 청화 큰스님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카멜의 삼보사를 찾아 가는 것이다.
꾸밈없이 기다란 목조 건물이 내려다보는 절마당에 차를 대니 영만 스님이 반가이 맞아 주셨다. 주지인 대석 스님은 마침 문중 일로 한국에 가셨다고 한다. 스님을 따라 높은 계단을 꺾어 올랐다. 여느 미국 집들이 대개 그렇듯이 겉보단 안이 넓고 실하고 대범한데 큰 법당에 삼존불까지 어엿이 모셔져 있으니 거기에 더해 온 공간이 은은하고 향기로웠다. 방을 배정 받고 불전과 스님께 다함께 예를 올린 다음 오늘의 프로그램을 챙겼다.
저녁 예불 후 공양을 마치자 LA 에서 뒤늦게 따로 출발한 두 대의 차가 잇달아 도착하여 모두 서른여섯 식구가 둘러 앉아 자기소개를 하였다. 비록 LA 에서부터 차를 나누어 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 왔지만 이 절 저 절, 이 단체 저 단체 소속으로 미처 인사를 나눌 틈이 없었던 것이다. 하기야 불자라는 것보다 더 큰 공통점이 어디 있겠는가. 인사가 끝나자 줄지어 바닥에 꿇어 앉아 죽비에 맞춰 함께 반야심경을 사경하였다.
이튿날 새벽 네 시 십오 분에 아침 예불을 드리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근처 언덕길을 산책하였다. 돌아와 오관게를 다 같이 읊고 아침은 발우 공양. 여덟 시에 무리를 둘로 나누어 각각 타싸하라 온천욕과 몬트레이 페블비치 관광에 나섰다.
타싸하라로 가는 길은 몹시 험하여 운전자나 탑승자는 얼마 전에 타버린 온 둘레의 숲들과 같이 속이 다 까맣게 타 들어가나 싶었는데 목적지에 당도하자 가까스로 불길을 피한 일본식 선방이며 온천 시설이 아무 일 없었던 듯 앙증맞고 효율성 있게 운영 되고 있었다. 그들은 이 후미진 골짜기에까지 사람을 불러들이고 미소와 아기자기한 기억을 선사하며 아까움 없는 보시를 남기게 한다. 우리는 바위 그늘에 모여 앉아 볼에는 김밥을 틀어넣고서도 지나치는 선량한 남녀 백인들에게 일일이 웃음으로 답례를 하였다.
절로 돌아와 보니 바닷가로 갔던 팀들은 이미 돌아와 발을 뻗고 쉬고 있었다. 이들을 불러일으켜 함께 법당에서 연꽃 만들기를 시작하는데 오늘의 반가운 도반들, 북가주 여래사 신도 열 두 분이 밴을 타고 도착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부처님을 뵈러, 흩어져 만나지 못했던 북가주 불자들을 보러 이 먼 길을 달려 온 것이다. 금방 섞여 끼리끼리 법당 마룻바닥에 둘러 앉아 색종이를 오리고 풀을 붙이니 마치 엊그제 국민학교를 졸업했던 한 반 아이들이 다시 모여 까르르 웃고 떠드는 미술 시간과도 같았다.
미술이 있다면 어찌 음악 시간이 없을 수 있을까. 템플 스테이 전 기간 동안 날마다 고요와 절도 속에서 정성스레 올린 예불과 참선, 음식을 받아먹는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하는 발우공양, 몸으로 정진하는 울력 얘기는 일단 미루어 두자. 이날 밤 우리 남북 가주의 꾀꼬리 같고 폭포수 같은 선남선녀들은 부처님의 자비로운 미소가 내려다보는 카멜의 산기슭에서 작은 산사음악회를 열지 않았겠는가. 손뼉을 치며 몸을 흔들고 부추기면 빼는 척하다 못 이기는 척 마이크를 잡으니 놀랍고 우스운 중에 저마다 그 동안 쟁여 놓았던 신명을 풀어내었다. 이 어찌 운영진의 치밀성, 반주의 탁월함과 사회자의 능란 덕분이라고만 하겠는가. 밤은 깊어 열 시가 다 되어가니 남북 불자들의 전에 없던 합동 음악 시간은 예정 된 두 시간을 조금 지나 가까스로 마무리 되었다.
이튿날 모든 것을 마치고 아쉽게 헤어져 1번 해안 도로를 타고 돌아오던 중 빅서의 낭떠러지 위에 차를 멈추었다. 발아래 옅은 물안개 속에 물결이 하얗게 밀려들고 있었다. 그러다 줄지어 기슭을 때리는 그 흰 파도들은 어느 새 우리를 위해 박자를 맞추는 것이었으니 나는 참지 못하고 두 팔을 내뻗었다. 불자여, 동포여, 모든 중생들이여, 사바의 험난한 파도를 넘어 손잡고 부처님의 자비를 함께 노래부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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