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인의 신앙 / 이성재(한국문인협회 샌프란시스코지부 회장)
요즘 세상에는 조그마한 범죄에서부터 살인에 이르기까지 무서운 죄를 짓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법이 없고 세상을 바르게 살라는 하느님의 말씀이나 성인들의 가르침과 윤리 도덕의 교훈이 부족하여 죄를 짓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인류가 사랑과 평화 속에서 바르게 살아야한다는 많은 가르침들이 있으나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며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많은 법률과 규정이 있어도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며 나는 어떻게든 그것을 피해가면 된다는 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날뛰는 것이 요즘 세상의 현실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마저도 제 입맛에 맞추어 해석하며 신의 아들딸인 것처럼 사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성경에 적힌 하느님의 말씀은 이해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는 데는 더욱 현명한 지혜와 사랑과 자기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바르게 이해하려는 지혜를 길러야한다.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어떤 것은 이론과 논리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렵게 쓰여 있고 과학적인 근거를 찾아 해석하기는 더더욱 어렵게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구절을 보면 그것을 주제로 간단한 에세이나 시를 쓰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터득해보려고 노력해 보았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를 여러 번 읽고도 왜 내가 소금이고 어떻게 빛이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어려워 하느님께 물어보았다. 주님, 저에게 왜 하필 소금이 되라 하십니까. 저는 못하겠습니다. 저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또 남이 저를 알아주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남이 부러워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가슴은 꽃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고 머리는 별처럼 지혜롭게 빛나고 몸은 천년을 살아온 푸른 소나무 같이 건강하고 오래 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세상만물 하고많은 것 중에서 저더러 하필이면 소금이 되라고 하였습니까. 아무리 하느님께서 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셨다지만 저는 소금이 되기는 싫습니다. 그러나 제가 빛이 되라는 말씀은 저의 얄팍한 생각으로는 기쁘게 받아드리고 싶어집니다.
소금이 소금으로 보람된 삶을 살려면 위선 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위해 내 자신을 녹여야 하지 않습니까. 소금이 김장배추의 하얀 가슴을 파고들지 못하고 소금덩어리로 남아있었다면 그 김치는 아무도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금은 모든 음식을, 심지어 수정과나 감주 같은 단 음식에도 알맞게 들어가면 한층 더 그 맛을 제대로 낼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소금이 상위에 자리 잡고 있지만 하나의 독립체로서 혀에 닿는 맛을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당장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말 것입니다. 단한가지 역할, 즉 제 몸을 숨기고 남에게 스며듦으로써 비로소 남을 썩지 않게 하고 맛나게 만드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면 주님, 저는 너무 억울해서 못하겠습니다. 저도 빛나는 삶을 살고자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어떻게 남을 위해 희생만 하라는 것입니까.
내 자신이 소금으로 살지 못할 속물임을 잘 알지만 문득 소금에 대한 칭찬 한마디가 떠올랐다. 음식의 맛을 평가하는 말 중에 가장 적합한 칭찬은 “간이 잘 맞으니 맛이 좋다.”라는 말이다. 곱씹을수록 마음에 드는, 있는 그대로를 칭찬한 훌륭한 표현인 것이다. 주님, 그래서 제가 비록 소금은 되지 못할지라도 간이 맞는 인간으로 살겠습니다. 그러니 다시는 저에게 소금이 되라는 그 무거운 질책은 거두어 주소서. 그래도 저는 소금이 간을 맞추는 원리를 따라 너무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게 살겠음을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정말로 남의 가슴에 피가 흐르는 아픈 상처에 뿌려지는 소금이 되지 않고 쇠붙이를 녹여 녹슬게 만드는 소금으로 살지 않게 노력하겠으니 주님 도와주소서.
너는 세상의 빛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은 정말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저에게 잘난 척하고 욕심을 부리는 허영심을 주셨습니까. 제가 세상의 빛이라 하셨잖아요. 태양은 하느님의 몫이라 치더라도 저는 전깃불, 아니 촛불 정도만 되어도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두운 밤늦게 하느님께 기도하는 어머님의 얼굴을 밝혀주는 촛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저를 막으면 겸손히 그 가람의 그림자를 그려주지만 굽어지거나 피해가지 않는 촛불이 되겠습니다. 주님, 쉽게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지 않게 바람을 막아 주소서. 빛이 없이는 만물의 생명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원초적 본능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빛에 의지하고 빛에 감사하는 마음이 하느님을 섬기는 신앙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주님, 제가 빛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들고 좋아서 우쭐했습니다. 그 말씀은 제가 만인들을 비추어 줄 수 있고 세상을 환하게 하는 빛나는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문제가 많습니다. 제가 어떻게 빛이 되겠습니까. 촛불이나 등잔불 또는 캠프장에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처럼 제 몸을 태워 빛을 내라는 말씀이지요.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제 몸을 태우라 하시나요. 그렇지만 제 몸을 태우지 않고 빛을 내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제가 빛이 될 수 없다면 나의 희생으로 남을 도우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왜 이런 말씀이 저에게는 힘들게 이해되고 실행에 옮기기는 더더욱 어렵습니까.
주님, 저는 빛이 되기도 어렵게 보입니다. 소똥 벌래가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며 반짝이는 반딧불이라도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빛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에게는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삶이 하느님의 빛을 가려 남에게 어둠을 주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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